미래를 여는 책/서평

[2024 독서후기 공모전] 최우수상(재학생 부문)

CNUL 2025. 2. 6. 15:34

독서후기 대상도서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코스모스 물감

홍태영

 

인문학이란 본디 ‘인간의 모습’을 녹여낸 작품을 통칭한다고 한다. 이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소설은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흔치 않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인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글이다. 꿈과 외로움, 사랑과 상실, 인기와 성공, 청춘과 가정, 도피와 노동, 행복과 삶… 살면서 한 번씩은 해볼 만한 고민을 개성 있는 인물들의 사연으로 녹여내었다. 등장인물들이 정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고,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내 자신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철학은 진리를 사랑하여 사유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규정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그 한계가 있기에, 대체로 은유와 비유를 통해 표현하곤 한다.

같은 맥락에서‘마음의 얼룩을 지워주는 세탁소’를 은유와 비유로 해석해본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는 마법사’를 만나 저마다의 상처나 악몽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는 마법사’는 없으니까. 그러나 관점을 바꿔서,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의 편견에서 벗어나‘마음의 얼룩을 세탁해 지워내다’라는 문장에 집중하면 조금 달라보인다. 마음의 얼룩은 무엇인가, 얼룩을 지워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계와 인간의 차이는 감정의 유무에 있다고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느끼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살아간다. 연속된 삶속에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일을 겪고, 그에 따라 울고 웃으며 생을 이어간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얼룩’은 그러한 감정의 집합체, 기억 속 트라우마나 마음의 상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누구든 살아가며 다양한 문제를 겪는다. 학창시절 하기 싫은 공부, 스포츠나 게임의 승패, 부모님 혹은 친구와의 갈등과 같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부터, 각종 사회에 서 겪는 인간관계 문제, 금전적 갈등, 건강 고민, 여러 사회적 가치를 위한 투쟁과 같이 거창해보이는 문제까지. “삶이란 갈등의 연속이다”라고 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은 때때로 상처가 되기도, 성장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상처는 금세 나아 사라지기도 하지만, 곪기도 하고,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성장의 자양분이 되더라도 성장통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으며, 너무나 많은 자양분으로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지기도 한다. 이 ‘문제의 흔적들’이 바로 얼룩인 것이다. 

마음 세탁소에서 지은은 사람들의 마음 속 얼룩을 지워주는 사람이다. 재하는 영화라 는 꿈의 좌절과 홀어머니의 뒷모습에서 본 외로움의 얼룩을 갖고 있다. 연희는 사랑의 상실과 배신감이라는 얼룩에 뒤덮여있으며, 은별은 인기와 성공이라는 화려한 얼룩에 파묻혀있다. 연자 씨는 청춘의 얼룩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딛고 일어서며, 영희 삼촌은 시간과 문에 대한 강박이라는 얼룩에 짓눌려있다. 무한한 삶을 반복하며 잃어버린 부모를 찾던 지은은 현재의 행복을 회피해온 스스로를 자각하며 ‘행복 없는 불로(不老)’를 끝내고 ‘행복한 노화(老化)’를 맞이한다. 붉은색 꽃만이 얼룩진 옷에 푸른 꽃잎의 바다가 수놓아지며 얼룩들이 조화를 이룬다. 즉, 얼룩은 문제와 상처의 흔적인 동시에, 삶을 증명하는 필연적인 요소라 볼 수 있다.

진중하게 몰입해 읽으며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준 독서였다. 재하의 영화와 같은 꿈, 연희의 정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은별의 돈과 성공, 연자의 책임감, 영희의 깨달음, 지은의 해방… 각각의 인물이 처한 상황과 느낌을 공유하며 내 고민에 덧씌웠다.

영화감독의 꿈을 꾸던 이들을 만나봤고, 예술의 드높은 편견에서 헤매기도 했다. 정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해보진 못했을지언정 인간관계의 갈등을 적잖이 겪어봤고, 이토록 물질적인 사회에서 또다른 가치를 찾고자 노력했다. 가정에서 과분할 정도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고, 강박은 없더라도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져봤다. 행복은 대단한 목표나 결과가 아닌, 행동 과정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체감하고 살고 있다. 항상 행복하진 않더라도 다가온 행복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었다. 그런 내게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메리골드는 이미 피어난 꽃이다. 언젠가 시들어버리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은이 메리골드 마을에서 얻은 깨달음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글 속의 지은은 삶의 원동력이자, 삶의 이유와도 같은 행복을 되찾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메리골드를 만개시켰을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깊은 인상이 남은 구절이 있다. “음...초를 켜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빌어.”

“음...초를 켜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빌어.”

“기도를 할 때 초를 켜잖아. 초가 자신을 태워 환히 밝히듯 해가 지며 하늘을 환히 밝히는 순간에 세탁소를 거쳐간 이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거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中

회광반조(回光返照)가 떠오르는 구절이기도 하면서, 남을 위해 온 힘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잔뜩 얼룩진 삶을 살아가면서도, 남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 마치, ‘코스모스’가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조화(調和)와 겸허이다. 무질서(chaos)의 반댓말이기도 하며, 천문학자 칼세이건의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내 마음의 얼룩을 조화로이 하여금 마음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겸허한 태도로 질서를 표현해나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읽으며 얻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스모스로 그리고픈 얼룩, ‘코스모스 얼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