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2(재학생 부문)
독서후기 대상도서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희망은 마음속에서 영원히
이정민
나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읽고 사람들이 치유와 위로의 말에 굶주려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피곤한 사람은 잠에 들기를 원하고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이 책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사람들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결핍, 혹은 상처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얼룩을 지우기 위해, 또는 나름의 이유로 마음 세탁소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나는 이에 위화감을 느낀다. 다른 독자들은 책을 통해 자신이 위로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책의 감정선을 따라가지도 못했다. 분명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인데도 정작 사람들의 상처에 마음을 다해 공감하지도 못했고 그들이 느끼는 현실의 무게감에 대해서도 실감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사회라는, 인간관계라는 벽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는데 뜬금없이 등장한 세탁소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문제가 해결되자 그들의 온 생애와 상처가 한없이 가벼워진다고 느껴졌고 이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대강 치부될 일이었다면 애초에 세탁소가 없어도 상관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학기는 슬픈 일이 많았다. 전남대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이 4월 21일 오후 5시쯤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5월 23일에는 20대 외국인 유학생이 스스로 기숙사에서 목숨을 끊었다. 두 번의 안타까운 사건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사망한 1학년 학생이 나와 같은 기숙사 층을 썼고, 심지어 상당히 가까운 거리를 두고 방을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게 느껴졌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머리를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마음 세탁소는 이에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책이 미워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거면서 기대를 품게 만드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책이 나에게 한 가지 알려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은 오직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려도 신은 응답하지 않고, 우리 동네에 마음 세탁소가 생기길 염원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 삶의 주체는 사람이다. 다만 사람이 지극히 연약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면 문제다.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사람은 흔들리면서 생각하는 갈대이고, 연대하는 갈대이다.
갈대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갈대를 볼 수 있었던 곳은 항상 갈대밭이었다. 흔들리지만 생각하는 갈대,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제때 치유되지 못하면 상처가 곪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상처 입음이 반복되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함께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끼고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편이 없는 것만 같다. 마음의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악화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기 위해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자신의 재미를 위한 무분별하고 이기적인 관심 말고, 타인을 위하는 관심을 말한다. 즉, 마음을 쓰는 관심이다. 이는 타인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이 쾌락만 느끼면 되는 일회적이고 저급한 수준의 흥미에서 비롯된 관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살피고 보살필 줄 알아서 자연스레 행동에서 배려가 묻어나오는 성숙한 마음의 관심이다. 나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사려 깊게 행동할 때 오늘의 세상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긍정적 변화를 희망할 수 있고, 그렇기에 비교적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선명해졌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열렬하고 격하게 사랑하기보다, 뜨뜻미지근하고 애매하게 사랑하는 것, 마음의 지면을 할애하여 신경을 쓰는 것.” 이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강도로 사랑하는, 계산하는 산술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 마음 한구석을 내어 주는 사랑을 하겠다는 소심한 다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가장 가까운 가족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알며 응원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신경 쓰는 일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마음먹는다. 나는 힘들고 지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위안이 되어 주고 싶다. 식견이 좁아 대단한 말을 해줄 수는 없지만 그 대신 활짝 열고 들어줄 귀가 있으니 다행이다.
현실에는 신도 없고, 사람들 마음의 얼룩을 지우는 메리골드라는 예쁜 꽃말을 딴 세탁소도 없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 깊은 데서 솟는 의지이다. 춥고 바람 부는 날에 서로의 온기를 의지하며 길을 걷겠다는 의지,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남겨 두었다가 타인을 위해 쓰겠다는 의지가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니 나는 신도,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주는 환상도 믿지 않으나 불굴의 의지를 품은 마음만큼은 믿어 보련다. 끝내 배반을 당한다 해도 나는 믿어 보겠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한 법인데 아직 순수함이 마음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어 악이 만연해 보이는 것뿐이라고 하는 강변을 말이다. 그런즉 희망은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껏 있는 것이다. 내가 믿는 한, 희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숨을 내쉬며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