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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서재 [추천도서]

2025 한 책 독서후기 공모전 수상작(시도민 최우수상)

by CNUL 2026. 1. 19.

수많은 점들이 모여 따뜻한 직선이 되는 그날

 

 

김지수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나이가 어리다고, 또 성숙하거나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이 가볍거나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 있고,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고, 그 대가로 잠시의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그 기쁨은 또 다른 슬픔과 맞닿아 있는 경계의 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지우, 채운, 소리는 고등학생이지만, 그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품고 있다. 상처의 시기와 크기를 누가 정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이들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세 인물은 각자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여러 사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점이다. 담임 선생님의 자기소개 규칙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처럼. 이 자기소개의 규칙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네 개의 사실보다 거짓말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는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에 주목한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우리가 진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거짓말 속에는 그 사람이 미처 드러내지 못한 목소리, 감추고 싶은 진실, 혹은 도움에 대한 신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우, 채운, 소리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아픔을 홀로 견디고 있었다. 그 무게는 오히려 자신을 더 세게 짓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억눌림 속에서도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지우는 용식이를 돌보고, 그림과 만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이어 붙였다. 채운은 뭉치에게 위로받으며 영어 앱 ‘바람영어’를 통해 자기 마음을 다독였다. 소리는 지우와 채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닿았다. 이들이 한 발씩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우에게는 선호 아저씨가, 채운에게는 엄마가, 소리에게는 아빠가 조용히 곁을 지켜주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상처와 아픔은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선호 아저씨가 했던 말 “실은 길 위에 종일 혼자 있는 게 제일 힘들다”는 단지 장거리 운전의 고단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하루하루 버텨내는 이들에게는 매우 긴 여정이다. 이 삶이라는 긴 여정을 버티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겹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 같은 정형화된 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 사이가 뭐라고” 선을 긋기보다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가가야 한다. 지우, 채운, 소리가 그랬듯이 말이다. 비록 그 이야기 속에 작은 거짓말이 섞여 있더라도, 그 거짓말은 때때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지우, 채운, 소리가 어른이 되면, 그들은 지금보다 상처를 더 잘 돌볼 수 있을까?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삶은 지나가 본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한 ‘점’에서 겪어낸 상처가 그 옆의 또 다른 ‘점’과 기꺼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단단한 ‘선’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단단한 선을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선 역시 수많은 점, 수많은 흔들림과 멈춤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점에 막혀 서 있기도 하고, 뜻밖의 점을 만나 길이 바뀌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삶이 갇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직선 안에 수많은 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언젠가, 살아온 날들이 모여 수많은 점들이 좋은 직선을 이루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점들 속에는 우리가 만난 사람들, 겪어낸 사건들, 그리고 말하지 못한 거짓말들까지 모두 담겨 있다.

김애란은 때로 진실보다 거짓말 속에 더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삶이란 홀로가 아닌 어떤 관계 속에서 나아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면서 거짓말처럼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나와 내 주변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된 것을 사람들과 이야기로 나누고 싶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도 정녕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면 수많은 점들이 모여 좋은 직선이 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 지우와 소리, 채운처럼 우리 모두의 점과 선들이 조용히 이어져, 마침내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직선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