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심은 때때로 거짓을 닮는다.
채해아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게임은 5개의 이야기 중 하나의 거짓을 섞어 이야기하면 그 숨은 거짓말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지우, 소리, 채운은 ‘이중 하나는 거짓말’게임의 5개의 이야기 사이에 들어가 있다면 누가 들어도 거짓말 같을 비밀을 하나씩 품고 있다. 지우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연인이었던 선호 아저씨, 도마뱀인 용식이와 지내며 용식이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연재 중이고,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3개월 이내로 사망할 사람의 손을 잡으면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채운은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아빠와의 몸싸움으로 아빠가 크게 다치고 결국 돌아가셨지만, 채운이 대신 엄마가 처벌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이 세 명의 아이들은 각자 다른 슬픔,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다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 세 명의 이야기는 결이 비슷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픈 비밀ᄃᆖᆯ, 그리고 그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지우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존재는 도마뱀 ‘용식’이었다. 엄마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지우의 곁을 지켜주고 존재만으로도 응원이 되어주던 용식의 존재는 지우를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낼 수 있게 했다. 소리는 죽음을 직감하는 자신의 손이 원망스럽다고 느낄 때,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손이 죽음이 아닌 시작에 가까울 수 있음을 느꼈고, 채운이는 가족보다도 가족같은 ‘뭉치’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되어주었었다.
이처럼 서로에게 소중한 것을 서로가 알아 봐주는 것은 세 명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지우의 용식이를 소리가 돌보아주며 용식이가 지우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해주고, 채운이 뭉치를 잃어버렸을 때 소리가 뭉치를 찾아주었다. 채운의 기억 속에서 가장 끔찍했던 날의 기억 속 뭉치의 존재를 지우가 웹툰으로 그려 알려주고, 소리가 그리는 그림을 채운이 보고 소리의 손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빛난다고 말해줬다. 비슷한 아픔과 비슷한 구원들을 가진 세 명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그 아픔에 더 깊이 파고들어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그들의 소중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책 속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라는 것이며,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이어지고 따로, 또 같이 흘러간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의 위에, 각 인물들의 사연으로 인한 다양한 감정이 얹어지는 흐름도 존재한다. 소리가 아픈 엄마를 간병해야 했기에 평범한 아이들이 누리는 어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린 마음에 엄마가 뿌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도 날마다 엄마의 손을 잡으며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과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자책하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지우도 처음에는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생각 아래에서, 엄마가 본인을 남기고 무책임하게 떠났다고 생각해 엄마를 미워하다가,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신 것임을 알고 난 후에서야 온전한 슬픔을 느꼈다. 채운도 본인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상주 자리에 서서 사람들이 전하는 위로의 인사를 받으며 고통스러워 했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가 곧 회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 앞에서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안도의 눈물인지, 두려움과 불안의 눈물인지 알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감정들은 모두 가족의 일이기에 이렇게 복합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힘들고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가족이기에 마냥 나쁘게만 보지는 못할 그런 감정들을 주인공들과 함께 겪어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복합적인 감정들 속에서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동시에 이중적인 두 가지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감정이 송두리째 뒤집히기도 하는, 이런 솔직하고 복잡한 주인공들의 감정들을 보면서 ‘이 소설 속에서는 과연 거짓말이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에서 보면 거짓말처럼 보이는 것들도 누군가의 진실일 수 있다는 것. 이중 그 무엇도 거짓말이 없지만, 이중 하나는 거짓말 같은, 그런 진실을 가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반어적으로 나타낸 제목이 아닐까.
한 사람의 어떤 이야기도 다른 사람이 쉽게 겉에서 그것의 진위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게임의 규칙에서처럼 우리는 그저 때때로 각자의 진실 속에서 억지로 서로의 거짓말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진실과 진심을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짓말인 것처럼 살아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와 진실을 멋대로 해석하지 않는 것, 이중 하나는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모두 다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열심히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서로에 대한 배려로 만들어 낸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 배려해가며 완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지우는 끝이 없는 이야기는 너무 암담하기에 끝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고, 소리는 시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시작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한 이야기의 끝이 있어야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우가 이해한 지우개의 역할처럼, 지우개로 무언가를 지워야 오히려 다른 더 큰 것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지움으로써 오히려 대상에 빛을 드리워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 속 소리와 지우, 채운이가 지금까지의 각자의 이야기에서 끝을 만들고, 또 적당히 지워냄으로써 다른 더 큰 이야기를 시작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함께, 새롭게 빛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가훈을 알아 오라는 담임선생님의 숙제가 있었다. 가훈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아빠는 며칠 후에 긴 족자 같은 걸 꺼냈다. 거기엔 붓으로 정성스레 쓴 14가지 항목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자식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확고했다. 그래서 지금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가훈을 읽고 또 읽게 했나 싶다. 이 모든 신조를 관통하는 한 가지가 바로 “거짓말하지 말것”이었다. 세 자매의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입이 말라비틀어지도록 말했다. 어떤 날은 아빠가 우리 셋의 이름 석 자를 부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딸 있는 집들은 다 비슷하겠지만 우리 집은 유독 엄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진 친구들이 그렇듯 적당한 돌파구를 찾으며 숨 쉴 곳을 찾았고, 적당한 거짓말로 아주 잘 감췄다.
나의 얌전한 돌파구 중 하나는 책이다. 나에게 책은 파도를 일으켜 바다를 일렁이게 할 수도 있고, 잔잔하게 할 수도 있는 바람과 같다. 책장 앞에 서서 제목에 이끌려 표지를 훑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을 때 흥미로우면 책을 집어 든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자 루틴이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던 순간에 제목을 보고 고른『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뒷면에는 “그해 우리 셋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고 처음으로 가까워졌다.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라고 쓰여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와 주인공은 비슷한 처지라고 짐작했다. 여기도 인생이라는 톱니바퀴 일부가 비밀과 거짓으로 맞물려 돌고 있구나. 책 속의 주인공들을 내가 어떤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나’ 때문이었다. 실험실, 과제, 전공 공부, 비교과 활동, 특강, 자격증, 외국어까지 챙기려니 몸이 부족했다.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상황에 굳이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더 나를 갉아냈다. 이미 남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수없이 채찍질했다. 지금 같은 시험기간에는 그 중압감이 배가 된다. 절대로 쉬거나 멈추지 않는 나를 보면서 위안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상 때문에 축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는 핑계 좋은 채운처럼. 감사하게도, 나의 깐깐한 성질을 잘 아는 엄마가 이즈음에 응원의 전화를 준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어디로 갈까. 나는 끝까지 잘 지낸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억지로 텐션을 올린다. 결국 엄마는 내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챈다.
진심을 담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거짓말을 선택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안심시키기 급급한 거짓말을 많이 했다. “이쁜 내 새끼, 공부 잘 허구 있냐잉.” 전화기 속 할머니에게는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는 것도, 요즘 공부가 잘 안된다는 것도 들켜서는 안 된다. 햇볕이 따가운 오후 3시에도 혼자 다니지 말라는 할머니의 고함에 친구와 함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급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전화를 끊었다. 사랑한단 말을 제외하고 전부 거짓말이다. 이런 자잘한 거짓말이 현실과 더욱 멀어지게 했다. 이제는 익숙한 듯 무뎌진 거짓말에 자주 슬픔이 찾아온다. 이것들은 내 마음에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메우거나 감추려 거짓말을 처방했지만, 독이 될 때도 있다.
할머니의 오랜 자랑이자 똑순이로 살던 나에게 대학에서 만난 동기들은 새로운 나를 알게 해준 활로였다. 우리 셋은‘허물없이’라는 표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의지하고 힘이 되어줬다. 하지만 어떤 사건 이후로, 이 둘은 오랜 증오가 이어져 같은 공간에 있지도 못하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를 깊이 느꼈다. 감히 말하지만, 책 속 주인공들의 엄마, 반려동물의 빈자리만큼이나 힘들었다. 다행히 ‘사건’을 이유로 나와 관계를 멀리하지 말라는 서로의 약속이 있었고 나는 따로따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절교한 지 1년쯤 됐을까. 어느 날,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서로 화해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사실은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일까 싶다가, 얼마나 내게 얘기하고 싶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진솔함을 보여준 그의 용기에 부응하고 싶어 처음 듣는 양 눈을 더 크게 떴다. 거리라고는 없던 우리 사이에 여백을 조금 남겨 그를 존중했고, 그는 그 안에서 행복해했다. 모든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몇 번이고 내 거짓말을 눈감아준 것처럼, 채운의 아빠가 곧 죽을 거란 말을 하지 못한 소리처럼.
나는 거짓말에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으로부터 나를 소모시키는 역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체와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실마리, 나의 진심을 비추는 거울 같은 순기능이다. 니체는 거짓말을 ‘인간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당하고 삶을 긍정하기 위해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나의 거짓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곁에 둘 수 있게 했고, 세상을 버티게 해준 모순적인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책 속 지우, 소리, 채운이 거짓말로 관계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과정은 나와 너무 비슷했다.
늦었지만 꾸밈없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 깨닫게 해준 지난 거짓말들에 감사하다. 그리고 왜 내가 거짓말을 하게 됐는지를 깨우치게 해준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도. 내가 한 거짓말들이 타당하다고 합리화하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행한 다양한 거짓말 중에서도 안주하기 위한 거짓말, 나보다 남을 우선시하는 거짓말을 줄이고 싶다. 고갈된 나를 인정하고 ‘진짜 나’를 찾고 싶은 욕구를 이해하며 나를 포함한 어떤 누구와도‘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 이 모든 거짓의 끝에 순기능만이 발휘되길 기도한다. 이제 막 시작된 해아의 성장통이 지우, 소리, 채운의 성장통만큼이나 아프고 감동적이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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