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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발견 [고문헌]

영화 왕사남의 주인공 단종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장릉사보 莊陵史補

by CNUL 2026. 4. 15.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장릉사보. 책의 첫 머리에 정조의 어제 서문이 있다.

 

장릉(莊陵)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단종오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조선 초기 비운의 국왕 단종의 왕릉이다.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고 약 4개월 뒤 영월 객사(客舍) 관풍헌(觀風軒)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때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영월엄씨 선산(先山)에 몰래 묻었는데 단종이 노산군으로 폐위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노릉(魯陵)이라 불렀다.

 

오랜 시간 방치되다 시피 했던 단종의 묘는 숙종 24(1698) 단종이 복위되고 신위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장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종의 사적을 다룬 조선왕실의 공식 역사서는 세조 때 편찬된 <단종실록>이 있다. 다만 이 때는 단종으로 복위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본래 서명은 <노산군일기>였다. 이 기록은 왕위를 빼앗은 세조의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역사적 왜곡과 오류가 심했다.

 

조선왕실의 공식 기록이 외에 단종과 관련된 역사서로는 1711(숙종 37) 영월부사 윤순거가 편찬한 <노릉지(魯陵志)>와 그 뒤 박팽년의 후손 박경여가 노릉지를 증보한 <장릉지(莊陵誌)>가 있다.

 

개인이 편찬한 장릉지.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영월에 도착하여 단종을 대면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이 책들은 영월 지역에 남겨진 기록과 민간에 전래되던 이야기를 정리하여 개인이 편찬한 야사(野史)로 그 내용이 풍부하지만 여러 곳에서 인용하였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있고 근거가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1791(정조 15) 정조는 장릉에 계유정난(癸酉靖難)과 사육신 관련되어 사망하였다 복권된 충신 230명을 배향하면서 그 명단을 기록한 장릉배식록(莊陵配食錄)의 편찬을 명했다. 그리고,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인 장릉지는 체재와 내용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역대 실록을 위주로 자료를 조사하여 새롭게 편찬을 명하였다. 이 작업은 편찬 담당자가 여러 차례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1796년 이서구(李書九)에 의해 완성되는데 이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장릉사보>이다.

 

<장릉사보>의 상편은 본기(本紀), 하편은 열전(列傳), 유편은 지(誌)를 본뜬 것으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의 체재를 따랐다. 장릉사보를 정사(正史)의 전형적인 서술체재인 기전체 형태로 편찬한 것은 개인이 편찬한 <장릉지> 등의 사서와 차별화하고 공신력을 확보하려는 정조의 의도로 생각된다.

 

<장릉사보> 의 편찬 이후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대체로 이 책에 따랐고 1936년 엄흥도의 전기인 <충의공실기>가 편찬될 때도 초간본에 <장릉사보> 의 내용을 더하여 중간본이 간행되었다.

 

정조 때 편찬된 필사본 원본이 규장각에 전하고 있으며 1914년 청송 방호정(方壺亭)에서 63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도서관 소장본은 1914년 간행된 목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