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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발견 [고문헌]

정조가 편찬한 두보와 육유의 시선집 어정두륙천선

by CNUL 2026. 6. 9.

<어정두륙천선> 1871년 담양 창평의 학자 석전 이최선에게 하사된 내사본이다.

 

시의 성인(詩聖)‘ 당나라 두보(杜甫)와 남송의 애국시인으로 불리는 육유(陸游)!

 

이 두 사람의 많은 시() 중에서 정조(正祖)1,000()를 선별하여 엮은 책이 바로 <두륙천선>이다. 임금인 정조가 직접 시를 선정하고 편찬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서명 앞에 어정(御定)’을 붙였다.

 

이 책은 1799년 정조(正祖)가 직접 편찬한 당나라 두보(杜甫)와 송나라 육유(陸游)의 시선집이다.

 

두보는 시의 신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 이태백)과 함께 당나라는 물론 중국 문학사 전체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특히 두보는 유교적 충의사상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반영된 시를 남겨 유교적 통치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학적으로도 글자 수와 평측, 대구를 엄격하게 맞추어야 하는 율시(律詩)의 대가로 한시(漢詩) 작법(作法)을 필수로 익혀야 했던 선비들에게 가장 완벽한 교과서였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두보의 시는 조선시대 여러 차례 간행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 전기 을해자로 간행된 <분류두공부시(일명, 두시언해)>는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외국 문학작품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용주 조경(1586~1669)의 장서인이 있다.

 

남송 육유(陸游)는 평생 만 수() 이상의 시를 지은 중국 최다작 시인으로 나라에 대한 충절을 담은 애국시부터 전원시, 연애시, 철학적 사색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제의 시를 남겼다.

 

특히 육유는 중원을 금나라에게 빼앗기고 수도를 남쪽으로 옮긴 남송시대의 인물로 잃어버린 영토 회복을 주장한 대표적인 애국시인으로 꼽힌다. 이런 육유의 시는 호란(胡亂) 이후 조선의 선비들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거기에 성리학의 시조인 주희(朱熹, 주자)가 육유의 시와 문학적 역량을 높이 평가했던 것도 조선 문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798년 정조는 두보의 시 777수를 뽑아 <어정두율분운> 5권을 편찬하고 이어 육유의 시 4,877수를 선정하여 <어정육율분운> 39권을 편찬하여 금속활자(整理字)로 간행하였다. 다음해인 1799년에는 두 책에서 각각 500수의 시를 뽑아 <어정두륙천선>을 편찬하였다.

 

정조가 1799년 여름 외삼촌 홍낙임(洪樂任)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에는 <어정두륙천선>의 편찬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여름 석달 동안 두율(杜律) 777, 육율(陸律) 4,877등을 공부하였습니다. 두율과 육율을 쭉 읽고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여러 번 보았으니 이제 1,000수를 뽑아 늘그막의 볼거리로 삼고 아울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지양할 바를 알게 하고 싶습니다. 동그라미 하나와 두 개를 한 것은 내가 취할만하다 생각한 것이며, 쌍점을 한 것은 생각 중에 있는 것입다. 동그라미와 점을 막론하고 집사(홍낙임)의 의견을 별지의 요령에 따라 첨지를 붙여 주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두율분운의 편찬에 관련하여 정조가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는 811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다. 이 일련의 편지들은 정조가 어정두륙천선에 수록할 시를 선별하면서 자신의 초고에 대하여 홍낙임의 의견을 구하였음을 알게 해준다.

 

이렇게 정리된 원고는 규장각으로 하여금 최종 편집하게 하고 주자소에서 금속활자(정유자)로 인쇄하였다. 17991223일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에는 두륙천선 당지본에 정조의 장서인 만천명월주인옹탕탕평평평평탕탕을 날인하여 홍낙임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정조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많은 시인들 중에서 두보와 육유 두 사람의 시를 직접 선별하여 편찬한 이유는 무었일까? 정조는 군서표기에서 오늘날을 살면서 옛 시대와 비교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풍속을 변화시킬 수 방법으로는 두보와 육유의 시를 놔두고 무엇을 쓰겠는가라고 편찬의도를 밝히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보와 육유의 시는 유교적 통치이념과 부합되는 시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조는 이들의 시선집을 인쇄보급하여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교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같은 해 915일에 주자의 시 중 도학의 뜻이 잘 드러나는 시와 운문 415수를 직접 선별하여 간행한 <어제아송>의 편찬목적과도 일맥상통한다.

 

도서관 소장본은 정유자로 간행된 금속활자본으로 1871(고종 8) 담양 창평에 거주하던 석전(石田) 이최선(李最善)에게 하사된 내사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