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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독서후기 공모전 수상작(재학생 부문-최우수상)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18. 12. 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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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오현석(일어일문학과)의 독서후기 '나는 인문대생입니다' 입니다.


 

'나는 인문대생입니다'

 

 

  막막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 정확한 이정표가 없던 내 인생 속에, 꼭 내 인생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기로 다짐하고 입대했다. 하지만 전역할 때의 내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수백권 이상의 독서를 했다. 턱걸이로 공모전에도 입상했다. 졸업할 때 필요한 언어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정작 내가 찾아갈 방향성은 내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전역 후에도 지금까지 단지 불안에 떨며 막연히 열심히 할 뿐이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내가 어디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일상에 막막한 미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앞의 독서후기 공모전 플래카드와 마주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지라 자연스레 그곳에 시선이 멈췄다. 정해져 있는 책을 보고 문학이 아닌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느새 내 시선은 다시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어떤 을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이라는 것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얀 도서관을 나오던 길, 무언가 홀린 듯이 붉은 도서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읽었다. 저출산, 저성장, 한계기업, 인구 마이너스, 인구절벽, 기업의 고용없는 성장, 중간층 직업의 삭제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자료와 표를 얼굴을 찡그리며 이해해 나갔다. 그리고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찾고자 하던, 바라던 내용은 없었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속이 꺼끌꺼끌했다. 내가 이제껏 공부하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더욱 변해갈 것이니 그에 대비해 너는 아예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일체 변할 생각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관심은 역시 일정 분야에 확고히 정해져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헛웃음이 입속에 머물지 못한 채로 터져 흘러나왔다.

 

  참으로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검증의 시간을 거친 연구와 조사의 결실을 전해주었더니, 제멋대로 해석하고는 스스로 불쾌해하는 꼴이 제법 볼만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전해주는 미래는 내가 끼어들 틈 없이 한없이 견고해 보인 탓이었다. 책의 내용을 나에게 이롭게 하기에는 내가 규격 외의 인물이었다. 책은 대한민국 일자리 지도와 생존전략을 전해주어도 내가 들을 생각도 없었다. 기술과 시대의 흐름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영향이 적은 문화나 언어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한, 합리화의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문화를 파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시청에서 주관해, 기업이 담양의 오래된 시장 거리를 재생하는 사업에 아르바이트의 형태로 참가했었다. 해 묶은 먼지를 털어내는 데만 꼬박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죽어있는 거리가 문화로 살아 숨 쉬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분명히 경제적인 형태를 취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 가치는 대단했다. 지역민이 어울리고 관광객이 찾아 왔다. 억 단위의 투자는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책에는 상관없는 기억이 나를 찾아온 것은 분명히 우연이 아닐 터였다. 뿐만이랴, 내 직전 학기 수업 중에는 유난히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업이 많았다. 물론 지금의 학기도 문화를 배우는 수업을 듣고 있다. 직접적으로 어떠한 문화를 생산한 적도 있었다. 전역하자마자 한 플랫폼에서 소설을 연재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이 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라는 책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찾는 내용은 없었고, 책은 읽은 후 나는 시야가 넓어져 스스로 작아보이게 느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또 다른 답을 찾으려 애썼다. 답은 역시 자신 안에 있었다. 인문학의 일부인 언어와 문화, 그것이 내게는 정답처럼 보였다. 결국 문화산업이야말로 나의 종착역이라는 결론이 지어진 것이다. 관심이 많았고, 경험도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갈증이 솟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책은 나의 있을 곳을 알게 했고, 확신 또한 가져왔다. 책에서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으라 했다. 그러면 문화를 파는 직업은 존재할 것인가. 존재했다. 직접보고 겪어봤다.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창의성과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필요한 일이 바로 문화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기계가 문화를 만들어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일의 DNA가 내게는 이미 흐르고 있었다. 제멋대로인 해석이었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이정표를 세우기로 하였다.

 

  책 속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 있었다. 요약하자면개인이든 기업이든 무슨 일을 할 것이며 또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 따지며 목표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다만 그 전에 그 일의 수요가 중요하다.’라는 내용이다. 문화는 방대하다. 지나치게 방대하다. 때문에 관련되어 있는 일도 수없이 많다. 그 일은 수요가 적은 일일 수도 있고, 개인의 역량이 미달 되는 영역일 수도 있다. 커다란 방향성은 정해졌으나 그것은 곧 미지의 길이었다.

 

  또 다른 숙제가 주어졌다. 그래도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마음의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생각없이 발걸음 닿는 대로 아무 길이나 걷는 것보다 수많은 길 앞에 놓인 것이 확실히 더 나았다. 일단 수요가 있는 문화이면서 내가 흥미있는 문화를 찾아야 했다. 그 후에 그 분야의 역량을 기르면 된다. 참 쉽게 적었으나 힘들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갈 길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인문대생인 나에게는 참 거리감이 생기는 책이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산 및 분석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수천년의 시간이 쌓여온 지식의 총체가 인문학이다. 변하기는 하되, 시시각각 흐름에 맞추어 행동해야할 필요가 있는 학문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것마저도 나의 착각이 아니였던가 싶다. 일과 문화를 연관지었던 나처럼, 누군가는 인문학과 일을 연관지을 것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던 책이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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