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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발견 [고문헌]

정조가 뽑은 사마천 사기(史記)의 백미(白眉) 사기영선

by CNUL 2026. 7. 9.

사기영선 정유자 복각본

 

사기영선(史記英選)!!!

<사기(史記)>에서 뽑은 뛰어난 글이라는 뜻의 이 책은 1796(정조 20) 정조가 <사기(史記)>에서 뛰어난 문장 26편을 뽑아 엮은 책이다.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는 중국 태초의 오제부터 한무제까지의 역사를 본기(本紀), (), (), 세가(世家), 열전(列傳) 형식으로 기술한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사서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중국에서는 기전체로 쓰여진 역사서를 정사(正史)‘라 하였는데 <사기>부터 <명사>까지 총 이십사사가 있으며 현대 편찬된 <신원사><청사고>를 더하여 이입육사로 부르기도 한다. 후대 왕조가 전대 왕조의 역사를 기전체 사서로 편찬하는 것은 정통성을 잇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기>의 서술은 문학적으로도 뛰어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열전은 미려한 문장과 재미로 전기문학의 시초로 불린다.

 

<사기영선> 권1 항우본기로 시작한다.

 

<군서표기>에 따르면 정조는 130편의 사기 문장 중 본기 1, 세가 2, 열전 22편에 태사공자서를 더하여 266권으로 편찬하였다. 이렇게 뽑은 글을 다산 정약용(丁若鏞)과 초정 박제가(朴齊家) 등에게 교정보게 한 후 초본(草本)을 만들어 여러 신하들에게 읽도록 권했다.

 

<사기영선>의 교정 과정은 정약용이 무오년 곡산(谷山)에서 쓴 사기선찬주를 올리는 계(進史記選纂注啓)’에 잘 나타나 있다. 이때 정약용은 곡산부사(황해도 곡산)로 부임하여 지방관의 업무에 힘쓰고 있었기 때문에 <사기선> 교정에 정신을 쏟을 수 없었다가 시간을 내 겨우 일을 마쳤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정조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26편의 문장을 뽑았을까?

<사기영선>에 수록된 인물들을 살펴보면 충신, 명재상, 지사, 협객 등 나라에 보탬이 되고 만인의 모범이 되는 인물들이다. 정조는 사대부들이 <사기영선>을 통해 뛰어난 문장 뿐만 아니라 이들의 행적을 본받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가 쓴 친찬시감인제인(親撰示監印諸人)’에 따르면 이제 수천 년이 된 글을 망라하여 그 가운데 20여 편을 가려 뽑았으니 너무 적다고 할 만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작법이 뛰어난 것만을 뽑은 것이어서 배우는 이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만일 이 책에 실은 수십여 편의 글을 읽고 작자의 규모를 조금 알고서는 조그만 성취에 만족한다면, 이는 많은 것을 줄여 놓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라는 경계의 말도 남겼다.

 

조선 후기 유행한 능치륭의 <사기평림>

 

조선 후기 유행했던 <사기>의 판본은 명나라 능치륭이 <사기> 130편에 대한 역대 여러 주석과 논평을 모두 모아 편찬한 <사기평림(史記評林)>이었다. 이 책은 숙종연간 금속활자인 현종실록자(顯宗實錄字)로 인출되었고 목판에 새겨 다시 간행된 복각본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사마천의 본문에 여러 학자들의 주석을 모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양이 많아 30책으로 간행되었다.

 

반면 정조의 <사기영선>에 수록된 26편은 주석을 제외한 본문만 수록한 것으로 책 제목 그대로 사마천의 뛰어난 문장을 만끽할 수 있도록 편찬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사기영선은 63책본과 85책본이 있다. <군서표기>에는 63책으로 편찬된 <사기영선>을 금속활자 정유자(丁酉字)로 인행하고, 다시 인본을 호남영남관서의 감영에 보내 번각하여 판목을 보관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렇다면 초기 판본은 63책 본이었고 뒤의 어느 시점에 2권이 더 추가되어 8권으로 다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홍재전서> 일득록(日得錄)에 따르면 <사기영선> 하단에 <한서(漢書)>()’ 가운데 몇 편을 추려서 덧붙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한서>는 후한 반고(班固)가 기전체 형식으로 편찬한 전한(前漢)의 역사서로 7권과 8권의 내용은 흉노전 등 열전 9편이 수록되어있다.

 

전남대 도서관 소장본은 63책으로 편찬된 초기 판본으로 금속활자(정유자)를 목판으로 인쇄한 복각본이다. 사료적 가치는 높지 않지만 <사기><한서>에서 좋은 문장을 뽑은 정조의 선별 기준과 이를 보급하여 사대부들 문장의 기준으로 삼으려 했던 정조의 문화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