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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1(지역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0. 1. 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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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지역민 부문)을 수상한 한선희 님의 '우리는 옳다'입니다.

 

 

우리는 옳다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런 느낌을 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 처음 이 책의 책장을 펴며 받은 첫인상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당신이 옳다’라니,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미적지근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런 의심조차 너무 부끄러워졌다. ‘당신이 옳다’는 정혜신이라는 치유자가 치열한 정신적 피해의 응급 상황에서 다정한 전사로 싸워오며, 보이지 않는 피가 흐르는 전투 속에서 얻어낸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준 책이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사망해가는 누군가에게 그를 구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얼마 전 학교에서 심폐소생술(CPR) 연수를 들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혹시 모를 사고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연수이기에 한 명도 빠짐없이 연수에 참석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한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받아야 할 연수가 심폐소생술 연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 CPR 역시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행동 지침이 아닐까. 특히 아직 여물지 못한 여리고 연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라면.

 

심폐소생술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넘기기 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위급한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리적 CPR 역시 타이밍이 중요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가 신호를 보낼 때 우리가 이를 알아차리고 심리적 CPR을 시행해야 한다. 작가는 이를 ‘공감’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어떤 교사였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 것이다. 아니,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제대로 된 ‘공감’을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라고. 교사로서 늘 ‘바른말’을 해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것이 학생에게도 ‘옳은 일’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뼈아픈 후회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찾아왔다. 내가 판단했을 때 잘못을 저질렀던 학생에게도 ‘바른말’보다는 먼저 ‘공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라는 약간의 무게도 실려있지 않은 뻔한 훈계조의 말이 아닌, 보다 체중을 실은 ‘공감’의 말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 수년 전 가르쳤던 제자에게서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고민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졸업한 제자라는 존재는 어쩐지 조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이 들어 가볍게 그러라고 말했다. 평소 학생들에게 하던 대로였다면 너무 늦은 시간에는 윗사람에게 전화하는 건 실례라는 훈계조의 말이 먼저 나왔을 터였다. 이윽고 제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재혼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여기며 오히려 재혼한 상대의 자녀들을 걱정하신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대학생인 네가 잘 보살펴 줘야 한다면서. 아버지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참 어려운 순간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아버지를 이해하고 어린 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많이 힘들겠지만 이 순간도 지나갈 테니 힘을 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순간 그냥 든 생각은 ‘화가 난다.’는 거였다. 그래서 화를 내버렸다. 많이 속상하지?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러신다니. 너도 속상하다는 걸 솔직히 말해야 해. 참지 마. 화를 내도 괜찮아. 쏟아붓다 보니 학생이 웃기 시작했다. 아마 평소의 나의 모습과는 다른 생소한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속상해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학생에게 속이 풀릴 때까지 걸어도 좋고, 울어도 좋고,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지만, 추우니까 너무 늦게만 들어가지 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조금 더 늦은 밤에 학생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며, 이제 집에 들어왔다는.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순간이 다르게 회상된다. 평소의 나였다면 어른스러운 충고와 조언이 학생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 평소의 나였다면 ‘바른말’로 다시 한번 학생에게 상처를 안겼을지도 모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그날 밤 어쩌면 조금이지만‘공감’을 경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어쩌면 맏이로서 늘 동생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나’가 그 학생에게 감정이입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처럼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공감’, 이제 나는 이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아이들을,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끊어야 할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바른말’을 줄여가며(아주 끊지는 못할 것만 같다), 상대방의 개별적인 존재 자체에 집중해 보려 한다. ‘그의 존재 자체에 집중하고 주목’하는 행위 자체가 다정한 공감이고 치유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가 한 행위 자체보다 그의 감정에 집중해 보려 한다. 그가 고등학생, 성인, 남자, 여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에 속한 존재만이 아닌 ‘하나의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해 보려 한다.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당신이 옳다.”고. 온 체중을 실어서 무겁게.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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