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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최우수상(지역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0. 1. 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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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최우수상(지역민 부문)을 수상한 박신호 님의 '아픈 영혼을 위한 치유의 한마디 "당신이 옳다"입니다.'

 

 

아픈 영혼을 위한 치유의 한마디 "당신이 옳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티벳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라마에 대한 대중(大衆)들의 존경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높다. 금발의 서양인들이 달라이라마 친견에 감격해 하며 눈물짓는 모습은 그의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달라이라마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힘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달라이라마에 대한 다큐영상물 시청(視聽)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화면 속의 달라이라마는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눈을 부드럽게 응시하면서 오롯하게 온몸으로 반응해 주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지금여기’에서 상대방의 존재를 향하여 자신의 모든 감각을 집중해 주는 것이었다. 달라이라마는 단지 대화에 집중하여 들어줄 뿐인데도 상대방은 깊은 존중감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심리적 공허함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환대에 가까운 집중으로서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다. ‘자비’란 이런 것이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는‘적정심리학’라는 낯선 용어를 제시하면서 현대인들의 정신적 고통과 해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혜신 박사는 거리의 치유사로 이름이 높다. 그녀는 이 책에서 다양한 임상치유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심리 치유에 대하여 안내하고 있다. 특히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5.18피해자, 용산참사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한 오랜 현장 치유 경력만큼이나 그녀의 심리 치유방법은 현장감을 지닌다. 정혜신 박사는 오늘날의 정신치유에 대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일상의 회복이나 일상적 교감에 집중하지 않고 전문가적 치유에만 기대려는 행위, 그게 일상의 외주화이다.”라고. 환자와 일상적 교감 없이 드러난 증상에 따른 기계적인 처방치료에 대한 경고이다.“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라는 말 속에서 오늘날 메뉴얼화 되어버린 교감 없는 심리치료법에 대한 정혜신 박사의 우려가 묻어난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몰이해와 소멸은 일상화 되어 있다. 최근 자살한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들의 비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현대인들은 심리적 허기 속에서 자신의 전존재를 이해해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에릭 프럼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의 몰이해성이 팽배한 사회에 대하여 경고를 하고 있다. 시인 김춘수도 <꽃>에서 우리들을 향해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는 심리적 허기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꽃 즉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노래한다. 정혜신 박사는 우리들은‘나’라는 개체의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존재의 증명을 위하여 몸부림한다고 진단했다.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무시될 때, 우리 곁에는 영혼의 독감인 우울증이 슬며시 다가온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혜신 박사는 “‘나’에 초집중하고, 그의‘나’를 자극하여, 그가‘나’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라는 심리적CPR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공감(共感)은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정혜신 박사는 말한다. 공감은 단순하게 상대의 감정에 동조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공감 없는‘바른말’에 많은 사람들이 찔려 넘어진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정혜신 박사는 진단한다.“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뜻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정혜신 박사가 말하는 공감의 방점은‘정확함’에 있다. 상대의 아픔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의 아픔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공인된 상담 방법의 섭렵은 물론이요, 내 자신의 선입견을 점검하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선입견을 살핀다는 것은 비상한 노력과 용기가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다.

< 당신의 옳다>에서 정혜신 박사는 공감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충조평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충고, 조언, 평가, 비판’은 우리가 상담 기법으로 흔히 사용하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문제는‘충조평판’이 공감보다는 일방적인 훈계에 가깝다는 점이다. 우정, 사랑, 가르침을 빙자한 공감 없는‘충조평판’은 상대를 향한 강력한 독배와 같다. 그래서 가까운 부모, 친구, 배우자, 선배들이 퍼붓는‘너를 위한다’는 숱한 위로들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아프게 한다. 정혜신 박사는“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직하게 들리기 시작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정신 치유 시작은 주고받는 공명을 통한 공감력에 있다는 것이다. 공감은 일방이 아닌 쌍방의 감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은 옳다>를 읽으면서, 영화<밀양>이 겹쳐졌다. 영화 속의 ‘신애’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깊은 고통에 방황한다. 그녀는 종교에 몰입하여 위로를 받지만 ‘신’으로부터‘이미 용서를 받았노라’는 살인범의 말을 듣고 나서는 세상을 향한 절망과 증오 속에서 무너져 간다. 결국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 입․퇴원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절망 가득한 신애’에게는 그녀 곁을 위성처럼 맴돌면서 고통을 함께하는‘종찬’이라는 한줄기 빛이 있다.‘종찬’은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하면서도 고백 한 번 못 한 채, 그저 고통에 젖어있는 신애 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신애’의 고통에 함께 공감하고 공명을 하는‘종찬’. 그는 ‘신애’에게 있어서‘밀양(密陽)’곧 어둠을 비추는 구원의 빛인 것이다. 바로 사랑의 빛이다. 공감과 치유는 이럴 때 일어난다. ‘신애’의 구원자는 신(神)이 아닌 인간‘종찬’인 것이다.“사람만이 희망이다”이라고 박노해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결국 정혜신 박사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치유는 “당신이 옳다”라는 진심어린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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