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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2(지역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0. 1. 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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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지역민 부문)을 수상한 최형민 님의 독서후기 '사랑한다는 말밖엔...' 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밖엔...’

 

이 문장은 올해 9월 26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2019 광주전남이 읽고 톡하다- 작가 초청 한 책 톡 콘서트’에 초청된 정혜신 작가님께 독자 사인회에서 직접 받은 것이다. 작가님이 온 마음을 실어 북 콘서트에서 하고자 했던 얘기는 사실 이 한 문장 속에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작가님의 진솔한 강연을 들었다고, 행사가 끝난 자리를 끝까지 남아 가지고 온 책에 저자의 사인을 받고 악수로 온기를 나눴다고 해서 그 문장이 당장에 내 것이 되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북 콘서트가 열리기 이틀 전 전남대학교 도서관에서 주최한 ‘한책 도서교환전’을 통해 비로소『당신이 옳다』를 접할 수 있었다. 북 콘서트 전까지‘읽는이에게’,‘프롤로그’,‘에필로그’정도만 간신히 훑고 지나간 나로서는 북 콘서트에서 작가님이 온 마음을 실어 밝힌 생각과 경험, 책에 써내려간 문장들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작가님을 만나고서도 당시로서는 감히 알 수가 없었다.

 

저자는 북콘서트에서“인간이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났을 때 심리적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진심어린 공감을 받는다고 느꼈을 때, 어떤 이는 지옥에서 한 발 뺄 수도 있고, 바로 그 지점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우리 삶에서 공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강조하였다.

 

작가님의 말과 문장이 내 마음에 온전히 닿기까지는 북 콘서트 이후 제주도 여행에서 만난‘일본인 광대’와의 만남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 만남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 바탕이 되었고 결국 나를 되돌아보고 만날 수 있던 감사한 경험이었다. 그제서야 어떤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예정되어있듯 놓고 있었던『당신이 옳다』를 다시 펼쳐들어 온 마음을 실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일본인 광대’와의 만남을 계속해야겠다. 북콘서트 이후 11월을 넘기기 전 어느 날 나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 걷기축제에 자원봉사를 신청하였고, 그곳에서 몇 년간 같은 축제에서 광대 봉사를 했다는 그분을 만났다. 그분을 만나기 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분과 나는 같은 숙소를 쓰고 있었는데 그분한테 배정된 방 앞에 진한 글씨로‘삐에로’라고 큼지막하게 붙여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아니 아무리 삐에로로 봉사왔다지만 방에서까지 삐에로로 살아야 하는건가? 옆에 이름이라도 써놓지.’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그분은 본명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친숙한 음식 이름을 본따서 지었다는 닉네임을 내걸고 활동하였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채 쉴 새 없이 축제 참가자들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음에도 시종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존경심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광대가 아니라‘그분’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궁금증을 느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연히 ‘삐에로’방에서 나오는 그분과 마주쳤다. 왜소한 체격과 헝클어진 머리, 푸석푸석하고 지쳐보이는 얼굴... 영락없는 중년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분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광대와 비교하면서 보게 되니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마음을 억누른 채 미리 알아두었던 그분의 본명을 불렀고 나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그분은 몰래 감춰놓은 걸 들킨 듯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고 그분은 한국어를 모르는 상황. 대화 나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에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분의 본명은 무엇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광대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그 일은 적성에 맞았는지, 어떻게 해서 광대를 직업으로 선택했는지 등등 전방위적으로 묻고 또 물었다. 그분 역시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내 물음에 잠시 고민에 잠기기도 하고 시종 진솔하게 답하고 또 나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대화는 그날 저녁 이후 다음날 저녁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분은 이틀에 걸친 그 대화에서 나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게 물어봐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며 그 이유를 상세히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대로서의 나를 좋아해주고 기억하는데 당신은 광대는‘저를 구성하는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광대가 아닌 제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주고 공감을 해주어 너무 좋았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 올해 제주 자원봉사는 안할까도 생각했고, 와서도 많이 힘들었는데 덕분에 위로가 많이 됐어요. 일본에 가서도 힘들 때마다 우리가 했던 대화가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나 역시 평소 생각해 보지 못한 분야의 사람과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도 얘기하고 그분의 진심어린 공감에 단단히 뭉쳐있던 마음 한구석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듯한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짧은 직장 생활을 마치고 모은 돈 다 긁어모아 장기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오니 남은 건 서른의 나이요, 남지 않은 건 통장 잔고이니. 여행기를 내보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지지부진. 몇자 끄적이다보니 어느새 2020년 새해가 코 앞. 남들 앞에서는 쿨하고 담담한척 했지만 제주 여행을 마치고『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그분과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나 역시 그분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진심어린 공감과 응원이 절실했던 상황이었다는 것, 내가 그분한테 묻고, 듣고, 공감한 부분은 결국 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과의 소중한 인연을 통해 작가님의 표현처럼‘너를 만나다 나를 만난’지금 내 스스로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삐뚤빼뚤, 우왕좌왕 실수투성이 부족함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나란 존재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져‘사랑한다는 말밖엔’더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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