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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2(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0. 1. 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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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김한음 님의 독서후기 '당신은 옳습니까?'입니다.

 

당신은 옳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지독스럽게 파편화된 시류는 멈출 길이 없어 기어이 개인의 존재마저 파훼하였다. 통념에 매몰된 호흡을 밭게 몰아쉬었다. 침잠하였으나 생을 염원하였으므로, 그러나 그 바람의 본위 또한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몰랐다. 밟은 이 자리는 필시 실체가 있는 표층이었으나, 정의하자면 어느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존재에 대한 무지는 점차 스스로의 자취마저 지워갔다. 그저 사회의 종용에 순응하였고, 틀에 박힌 사고를 연쇄하였으며 주어진 범주에 반문하지 않았다. 이따금 숨이 막혔고, 더러는 따르지 않겠노라 버둥질 치고 싶었으며 종종 울음을 성토하고 싶었다. 네가 옳다. 당신들이 옳다. 사회가 옳다.

그러므로 나는 옳지 않다.

나는 분명 공감共感했다. 명시된 기대를 충족하고자 이리 하라면 예, 저리 하래도 예. 모범이 되렴, 요구를 당연시 여기며 들끓는 감정들을 억눌렀다.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귀기 섞인 곡성이 뇌리에 폭열하여도 반기를 드는 것은 당위적이지 못하였으므로, 도의가 아니었기에 그 악업의 맹화를 애써 회피했다. 너를 위해 경청했다. 당신들의 요구에 충실했다. 사회의 틀에 나 자신을 짜 맞추었다. 귀엣말로 돌아오는 갈채에 한순간은 포만하였으나 늘상 기근했다. 날이 갈수록 극심히 허기가 졌다. 나는 진실로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점차 숨통을 죄어오는 조갈에 무언을 갈급하였으나, 취하려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두서없이 둑을 쌓아 올린다. 견고하도록 사고를 보태고 ‘공감’을 행하여도 균열 분명한 설각이 위태로웠다. 갈증이 범람한다. 직관적인 예지였다. 품은 이 감정의 군집들이 모조리 옳지 않으므로, 나는 기어코 사멸하리라.

아니, ‘당신이 옳다.’

저자 정혜신은 완전무결하게 단언하였다. 당신이 옳다고, 당신의 마음은 옳다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진정 옳습니까. 양 어깨에 무겁게 짊어진 모든 것들이 그 한 문장의 도파에 쓸려갔다. 300 페이지 남짓을 가득 채운 활자들을 관통하는 표상은 간결했다. 당신의 존재 자체는 옳다. 그래, 그러므로 나는 옳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주목을 존재에 대한 주목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대만큼 포만감이 없다.”, “반찬으로만 채운 배는 한계가 있다.”

나는 공감이 아닌 동화同化를 행하였던 것이다. 나의 성취와 나를 동일시하여 그것에 따른 주목과 공감을 진정한 내 것이라 여겼다. 알 수 없는 기근의 실체였다. 동화를 택하였기에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하였고, 스스로를 말살했다. 고로 ‘너’의 시선으로 사라져가는 ‘나’를 보았기에 스스럼없이 나는 옳지 않노라고 선언했다. 저자는 절멸의 혼재 속 간신히 자맥질이나 이어가던 ‘나’를 ‘공감’으로 건져내었다. 그는 나 자신이 내 공감의 허들이 된 반공감적 시선에 기꺼이 맞섰다. 나는 그 전장에서 필패하였고, 동시 필승하였다.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치유의 현장에서의 한 사람. 그는 ‘한 사람’으로서 매몰된 존재에 손을 내민다. 실낱같은 울음을 보듬는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안개가 자욱한 외딴 길 위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묻는다. 우리가 아닌 나를 찾는 것, 나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 나를 진실로 공감하고 나서야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즉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라고 했다. 그 존재 자체인 문에 닿으면, 문고리를 돌려야 한다. 존재의 감정을 열리게 할 열쇠는 바로 공감이다. 이 유기적인 일련의 행위를 거치면 치유에 이르게 된다. 종극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문인의 손길이 필요할까. 아니, 그저 나를 직시할 ‘한 사람’이면 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공감할 수 있고, 서로를 치유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나는 옳다. 내가 옳다. 내 마음 또한 옳다. 누군가의 푸념에 그저 고개만 주억이는 일이 공감이 아니다. 내 감정을 억누르며 불균등을 감내하는 것 또한 공감이 아니다. 나는 내 기근의 실체를 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반추하며 나는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여태 실존의 본위를 완전히 자각하지 못하였음은 자명하나 되짚는 과정 중의 편린들을 하나 둘 모았다. 위태로이 넘실대던 삿된 귀기는 더 이상 귓전에 맴돌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덮는다. 나는 그저 ‘나’다. 존재 자체로 ‘나’인 한 사람이다. 나에게 공감할 수 있는 나, 그리고 책을 읽기 전의 나와 같이 전장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이들에게 손 내밀 수 있는 ‘한 사람’인 나. 공감은 대화다. 정해지지 않은 선로를 따라 항해하며 그저 소통을 하는 것. 그리 하면 저마다 지닌 각기의 북극성이 도달할 향방을 찬연히 비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옳습니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래. 너와 나, 우리는 옳다.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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