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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1(지역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1. 2. 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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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

2020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지역민 부문)을 수상한 장빛나 님의 독서후기 '나이 서른, 내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다.'입니다.

 

나이 서른, 내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다.

 

  서른이 되었다. 삼십 년의 세월 동안 매사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선한 행동인지 고민하며 도덕적 선의 가치를 좇아 살아왔다. 신념에 따라 선하게 살면 언젠가는 반드시 신이, 혹은 운명이 보응해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의 백수이다. 지갑이 가난해도 마음은 뜨거우면 좋으련만 내면조차 불안하다. 이 심리적 불안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듯하다.

 

  가치관은 시대마다 다르며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나 보편화된 선의 가치는 존재한다 생각하여 양심이 시키는 대로 선하게 살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규범화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타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타인을 배려하며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이를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선이 타인의 선이 아님을 느낄 때마다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급기야 타인의 가치관을 답습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아를 잃었다. 어둠 속에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현대는 다원화된 사회이므로 방향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고등학생 때 배운 <윤리와 사상> 과목을 떠올리며 가치관을 정립하고 싶었지만 구조화되지 못한 짧은 지식으로는 내 마음에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했다. 독서를 통해 표류하는 나의 내면에 이정표를 꽂자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세계는 경험하는 주체로서의자아와 자아가 경험하는세계라는 이원론적 관점으로 구조화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스승들은자아세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이 책에서는 자아와 세계에 대해 정의하기 위하여 우주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고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큰 흐름 속에서 위대한 스승들의 거대 사상을 파악하였다.

 

  다양한 사상을 논하기 전 책의 도입부에서 당부한 것은판단중지 용기. 사람은 저마다 색안경을 끼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면 굳이 내 몸에 꼭 맞는 색안경을 벗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므로 ‘판단중지’와 ‘용기 마음에 새겼다.

 

  현대 물리학에서 밝힌 바 우주는 유한한 공간이 아닌, 다중 우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쉽게 가늠하기도 어려운 우주의 장대한 역사와 광활한 공간, 그 가운데 나의 존재는 아주 작고 미미하다. 우주의 관점에서 어쩌면 인간 개개인은 우연한 확률로 태어나 조용히 사라지는 생명체 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적당히 살다가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왜 인간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일까? 이 넓은 우주에서 나의 존재론적 가치는 무엇일까? 나와 같은 의문의 해답을 찾고, 더 나아가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하는 노력은 고대로부터 많은 위대한 스승들의 관심사였다.

 

  고대 아리아인들의 사상적 기반인 베다의 부속 경전 중 <우파니샤드>는 세계를 전체로서의 세계인브라흐만과 부분으로서의 자아인 아트만으로 구분한 후, 두 실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선언하였다. 중국도 이와 비슷하다. 노자는 인위를 멀리하고, 자기 내면에 있는 우주의 순리를 따름으로써 탈속 및 도덕 일치를 주장하였고, 주돈이는 태극도설을 통해 우주의 질서 안에서 인간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불교의 일체유심조 사상도 이와 맥을 같이 하여 자아의 내면 안에서 세계의 실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고대 동양 사상은 자아와 세계를 분리하지 않는 일원론에 기반을 두었다.

 

  이와 반대로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고대 서양 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각각 인식의 주체와 탐구 및 개발 대상으로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러나 외부세계에 대한 참된 인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겨났다. 이에 18세기 칸트가 인식 대상이 외부가 아닌 인식 주체의 내면에 있다는 관념론을 주장하면서 서양 철학은 일원론적 탐구를 시작했다. 특히 세계대전 이후 물질 중심적 세계관 및 플라톤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서양 철학의 방향은 다원주의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신과 인간이 엄격히 이원화된 기독교에서도 신인합일의 일원론적 측면을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하였다.

동양의 사유와 지구 반대편 서양의 사유가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세계는 자아의 마음이 그려내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봄으로써 세계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거대사상이자 가르침이었다.

 

  텅 빈 우주는 인간이 사유하면서부터 자신을 성찰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즉 우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나이다. 세계는 나와 독립된 개체로 보이지만, 결국 세계를 인식하고 정의하며 가치를 판단하는 존재는 나라는 점에서 자아와 세계는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수립할 때 내 세계는 한층 더 가치롭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가치 판단의 어려움으로 인한 혼란을 잠재우고, 다양한 사상을 통해 나만의 철학을 수립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독서를 마친 후 나만의 철학을 단시간에 세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 대한 판단의 주체가 나라면 정답이란 없으며, 내가 성장하는 만큼 세계도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유를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단순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이지만 나와 맞지 않는 단순함을 좇기보다 내 세계의 주체로서 타인의 생각을 비판적,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사고를 확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겸손하고 유연한 마음가짐을 갖겠다. 또한 매일 일기를 쓰기로 다짐했다. 부유하는 생각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나의 내면과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은 바로 자아와 세계의 통합 즉, 일원론이다. 세계는 나의 마음 안에 있다. 이를 온전히 깨닫는다면 더 이상 타인의 시선과 언행에 휘둘리지 않고, 내 인생의 이정표를 분명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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