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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인조 7) 담양부에서 간행된 오선생예설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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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1. 8.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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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

 

고풍스러운 표지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각 권의 목차가 멋스러운 이 책은 1611(광해군 3)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송나라 5학자의 예()에 관련된 학설을 모아 분류하여 편찬한 예학서(禮學書)이다.

 

전집 83, 후집 124, 207책으로 권두에 저자인 정구의 서문(序文)과 권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의 발문(跋文)이 있다.

 

송나라 성리학자 정호(程顥정이(程頤사마광(司馬光장재(張載주희(朱熹)의 예설을 모아 관···제와 잡례 등으로 체계 있게 분류하여 정리한 것으로, 전집은 주로 천자와 제후에 관한 예를 다루었고, 후집은 일반 사대부에 관한 예를 수록하였다. 정구는 이 책을 통해 왕실과 사대부의 예()가 다르다고 말하여 17세기 예학의 한 주류인 왕사부동례(王士不同禮) 학설의 단초를 열었다.

 

한강 정구는 영남 유림의 거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동복현감·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 등을 지냈다. 성리학과 예학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역사·산수·의학·풍수지리 등 다방면에 박학하였다.

 

지방관으로 재직하는 곳마다 그 지방의 읍지를 편찬하여 후대 지방지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눈병에 관한 처방을 담은 의안집방, 출산과 육아에 관한 의서를 정리한 광사속집 등을 편찬했다.

 

이런 그의 학풍은 주로 남인 계열의 성리학자와 실학자들에게 계승되어 조선 후기 실학의 사상적 원천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책은 1629(인조 7) 제자인 이윤우에 의해서 전라도 담양(潭陽)에서 간행되었다. 경상도 성주(星州)에서 태어나 영남 유림의 거두들에게 학문을 배운 정구의 저술이 담양에서 간행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책을 간행한 제자 이윤우의 고향도 정구와 같은 경상도 성주이다.

 

발문에 따르면 이윤우는 평소 스승의 저술 중 이 책을 중요하다고 여기고 1624(인조 2) 경연(經筵)에 참여했을 때 인조(仁祖)에게 간행의 필요성을 아뢰었다. 이 때 인조는 전란 이후 물자의 부족함을 들어 간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후 1628(인조 6) 이윤우는 담양부사로 임명되어 전라도관찰사 이성구(李聖求)와 간행을 논의했다. 그런데 이성구가 병으로 관직을 사직하자 나주현감 신계영(辛啟榮광산현감 이유달(李惟達순천현감 강대진(姜大進무안현감 김주(金輳) 등과 더불어 물자를 모아 책판을 분담하여 새기고 이성구의 후임으로 부임한 관찰사 권태일(權泰一)의 도움을 얻어 이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개인의 출판은 저자의 사후 후손이나 제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런데 책을 출판하는데 물자와 인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사례와 같이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게 되면 관청의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여 책판을 새기고 책을 인쇄하는 것이 일반적인 출판의 방법이었다.

 

오선생예설분류와 같이 작업량이 많아 한 고을에서 감당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주변 지방관의 도움을 얻어 책판을 나누어 새겨 간행하기도 했다.

 

도서관 소장본은 종이의 재질과 인쇄상태로 볼 때 간행 다시 초쇄본(初刷本)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원 소장자는 각권의 권수제면에 자신의 장서인을 날인하고, 각 책의 표지마다 목차를 정성스럽게 썼다.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책의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을 볼 때 책의 주인은 이 책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후 이 책이 소장자를 떠나 어느 시점에 소장자의 장서인이 모두 삭제되어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오선생예설분류 전시 안내

- 장소: 중앙도서관 5층 고문헌 자료실

- 전시기간: 2021. 8. 2. ~ 8. 31.

- 관람시간: 9:00~18:00(토요일, 점심시간 제외:12:0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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