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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1(시도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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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시도민 부문)을 수상한 김민성 님의 독서후기 '소설가의 책무'입니다.

 

소설가의 책무

 

매달 두어 번은 서점에 들르는데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방을 빼지 않는 소설이 하나 있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의 작품은 그 유명한 빨치산의 딸을 보았다. 빨치산의 딸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바를 기록한 소설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라기보다 역사서에 가까웠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에 서린 이데올로기가 어찌나 무겁던지 아끼고 아껴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을 보고 추측했다. 빨치산의 딸이 쓴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겠구나. 더 쓸 이야기가 남았던가. 더 털어놓을 아픔이 있던가. 일단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소설의 첫 두 문장이다. 강렬한 시작이다. 이번에도 무겁겠구나. 하긴,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은 가벼울 수 없는 주제겠지. 다 보려면 이틀은 걸리겠구나. 그래, 빨치산의 딸도 그랬었지. 아버지가 죽었다면 남겨진 딸의 이야기겠구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를 벗은 나의 해방일지겠구나. 결론부터 말한다. 나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단 하나도 맞은 게 없다.

쉬엄쉬엄 3시간 만에 완독했다. 유쾌했고 가벼웠고 찰랑거렸다. 빨치산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데올로기가 중심은 아니었으며 장례식을 묘사하고 있지만 마냥 지엄하지만은 않았다. 누구의 인생에나 품고 있는 소설 같은 삶,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가족의 사정이고 친구의 기억이며 이웃의 관계다. 하여 우리의 이야기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화자인 아리는 유년기 시절엔 아버지와 가까웠으나 성장해 갈수록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다. 아버지가 옥고를 치르며 눈에서 멀어졌고, 아버지의 과거 빨치산 행적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다. 외동딸이기에 상주가 되었고 3일간 상을 치르며 아버지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아버지의 생애를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이것이 소설이 보여주는 사건의 전부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건이 아닌 인물이다.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빨치산 또는 빨갱이로 살아 온 아버지의 절친은 군인이자 교련 선생이자 조선일보 구독자다. 작은아버지는 빨치산인 형 때문에 집안과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해 평생 형을 원망하며 살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군수가 된 사람이 빨치산의 장례식에 조화를 보내고, 베트남전 상이용사는 그 꽃을 향해 침을 뱉고 지팡이를 휘두른다. 아버지가 살려 준 전직 형사가 장례식에 조문 온다. 여든 아버지의 담배 친구인 열일곱 소녀도 얼굴을 비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다.

화자의 아버지는 누군가에게는 같은 이념을 가진 동지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념을 떠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누군가에겐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고 누군가에겐 척결의 대상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열일곱 소녀에겐 마음 따뜻한 이웃 주민이자 어른이었다. 어쩌면 가족에겐 자신의 앞길을 막고 집안을 말아먹은 죄인이리라. 아니, 어쩌면 가족에겐 한없는 연민이리라. 빨치산이라는 단어로, 이념과 사상으로 한 사람을 오롯이 정의할 수 있는가? 선과 악, 명과 암, 진심과 가식 같은 개념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 속에는 무수한 인간이 있다. 그들의 방향이 어찌 좌와 우 뿐이겠는가. 그들이 색이 어찌 붉음과 푸름 뿐이겠는가.

소설이기에 허구가 있지만 상당 부분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하여 매우 사실적이고 정확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상상력은 경험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하고 머리를 쥐어짜도 직접 겪은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조직이 와해 된 후 빨치산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의 이념이 무너지는 모습을 어떻게 견뎠는지, 가족을 비롯한 빨치산의 주변인들이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는 빨치산을 부모로 둔 정지아 작가보다 깊이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정지아 작가는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썼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 하여 이 소설은 소설과 기록, 그 중간 어디쯤 있다.

당연하게도 역사 교과서엔 역사가 쓰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역사 교과서엔 모든 역사가 쓰이진 않는다. 천일야화로는 꿈도 꾸지 못할 그 방대한 서사를 무슨 수로 고작 몇 권의 책에 담을 수 있는가? 나는 학창 시절에 역사 수업에 충실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역사를 공부해 왔지만, 빨치산에 관한 기록을 접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역사서에 남지 않았다 하여 역사가 아닐 수는 없는 법이며 역사서에 단 한 줄 자취를 남겼다 하여 결코 하찮고 가볍다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소설가는 반드시 한번은 상상력을 압도하는 경험을 토대로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역사의 허방을 소설로써 메워야 한다. 이는 소설가의 책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아 작가는, 그녀가 쓴 이 소설은 나와 같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나는 1984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대한민국의 이념 전쟁은 종극에 달해있었고, 자아를 가졌을 땐 민주화조차 뿌리를 내린 뒤였다. 나는 신분제의 탈피, 조국의 독립, 자유주의의 정착, 그리고 민주화까지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의 시대정신을 어느 틈바구니에서도 겪지 못했다. 나는 내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누나의 역사가 궁금한 사람이다. 때문에 내게, 아니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같은 소설이 필요하다. 동시대에 살지만, 한 세대 쯤 앞선 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소설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책무를 완벽하게 해 낸 정지아 작가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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