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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3(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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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신지영 님의 독서후기 '하염없이, 그저 견딘 슬픔'입니다.

 

하염없이, 그저 견딘 슬픔

 

헤어짐을 고하는 사람은 아무리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구구절절 가지 말라 다정한 말을 정성껏 늘어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고 이별할 수 없어 체면일랑 던져 놓고 목 놓아 애원해 보아도 잡을 수 없다. 또 어떤 이별은 말도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안녕을 고할 기회가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았든 이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언젠가는 모두,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존재와 헤어져야 하므로. 그러니 헤어짐은 언제나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온다.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별은 더욱 그렇다.

 

민중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룬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린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의 장례식 마지막 날까지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쓰였지만 구석구석 슬픔이 녹아 있다. 아버지를 잃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부터, 딸로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만 가득했던 어느 날까지 그래도 단지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 고상욱 씨의 장례식은 제멋대로 가지각색 상처투성이인 사람들과 사흘 동안 함께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기도 하도, 잘 죽었다며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항꾼에 온다며 묵묵히 잔만 움켜쥐다 가기도 한다. 그의 죽음이 새롭게 만들어준 인연도 있다. 할배를 보러온 노란 머리 아이, 다시 만난 동지와 같은 사람들은 딸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인생 한 부분이었다.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이제야 해방된 이도 있었다. 아버지를 자신의 실수로 잃어야 했던 죄책감에서 빠져나와 지금에서야 속죄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자신의 형제를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된 동생 그리고 그의 유골을 뿌리면서 비로소 진정으로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딸. 민중을 사랑했지만 정작 민중이 살아가는 시대와 어긋난 인생을 살았고,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는 그를 외면하기 일쑤라 빨치산으로 산 몇 년은 평생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념인지 사상인지 모질기도 모진 어떤 것들이 할퀴어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그들과 함께 고상욱 씨의 장례식은 마무리된다.

 

고상욱 씨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로를 전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선의를 믿었다. 사람이니까 그런다고,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삶이 죽음보다 덜 슬픈 일은 아니나 내일이 계속되니 팍팍하고 고되어도 기댈 서로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와 그의 삶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각자 가진 상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냥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어차피 사람이니까, 내일은 서로 토닥이며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그의 삶을 통해 전한다.

 

대부분 이 책에서 빨갱이라 불린 아버지의 삶 혹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주목하여 읽곤 한다지만 내게는 박 선생의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죽기 직전까지 이미 지나버린 인생을 되감지 못해 묵묵하게 살아내는 삶은 대체 어떠한가. 먹은 소주가 죄 눈물로 나와도 그저 견뎌야만 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의 슬픔은 어떻게 해야 작아질 수 있을까. 하염없다, 그 단어는 어떤 슬픔은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덜어내려고 노력해도 작아지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손을 뻗지도 윽박지르는 것도 못 하고, 목구멍 아래에 뜨겁고 뭉근한 것이 꿈틀거려도 그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삶도 있다. 이겨내지도 극복하지도 못하고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야만 한다. 가끔은 그것조차 참으로 염치없으니. 그렇지만 그가 깨알같이 적어 놓은 장부는 딸에게 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건네준다.

 

박 선생이 깨알같이 적어 놓은, 소주 한 병과 에쎄 한 갑 장부를 보며 나도 아빠 생각이 났다. 하루에 에쎄 한 갑. 가끔 소주 한 병. 아버지의 외투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천 원과 함께 나온 영수증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나에게 죽음이란 너무 먼일이다. 그런데 나중에, 정말 아주 나중에 우리 아빠는 에쎄 한 갑 살 곳 하나 없는 곳으로 가더라도 잘 있으려나 서글퍼지면 어쩌나. 징글징글하게 잘살고 있네, 목소리 한번 듣고 싶어도 그저 하염없이 견뎌야만 하는 그 순간을 나는 어떻게 하나. 내게도 영영 이별하기 전에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면 한다. 죽음이란 건 참 슬픈 일이라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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