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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2(시도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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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시도민 부문)을 수상한 유세종 님의 독서후기 '이념이 보여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입니다.

 

이념이 보여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독자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의 경제학자·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 ~ 2002)가 설립한 개념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일컫는다. 다른 사람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나 능력을 알 수 없게 만들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을 설립하거나 이기심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에 써지는 것에 찬성할 것이며, 이러한 원칙은 블라인드 채용과 같이 이미 사회 여러 부분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필자는 무지의 베일처럼 사회 전반에서 맹목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관념과 원칙이 여러 가지 있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요소들로 만들어진 베일 속에서 보고, 듣고, 살고 있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이념에 대한 시선이 만들어낸 색안경이며, 이름을 지어주자면 이념의 베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뿌리 내린 한국에서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이로운 부분만을 수용하자는 이야기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곧바로 그를 매국노, 빨갱이라 부르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면 더 이상 그 사람을 공산주의자 이외의 어떤 존재로도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이며, 그의 선행이나 좋은 말들도 공산주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한 편견과 착각에 의한 희생자가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작가의 아버지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아직도 공산주의의 이상에 빠져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느니 하는 아버지를 사회 부적응자 취급해 항상 진절머리가 났으며, 그런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 역시 못 마땅해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자 뜻밖의 애틋함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순수한 아버지로서의 선행을 보고 아버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으로 빨치산이 아닌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낙인을 찍은 상태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행동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며 자신의 가족들마저 거지로 만들고, 극기야 죽도록 만들어가면서까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이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아버지가 빨치산이었기에 해왔던 행동들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에 남에게 베푸는 이들 따위는 한 명도 없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정이 많고 이타적인 사람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준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부를 공평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이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수나 담배 친구도 빨치산이나 공산주의자여서 아버지와 친구가 되었겠는가?

남에게 베풀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반드시 있다는 말처럼 남을 돕는 것은 자본주의의 이론상으로도 결함이 없는 행동이다. 또한 아버지의 빨치산 행적으로 인해 오해받아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아버지가 죽인 것이 아니다. 이념에 대한 색안경을 낀 공권력의 손에 의해 돌아가신 것이므로 아버지의 실책이라고 할 수 없다. 아버지와 친해진 인연들 중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학수나 담배 친구 이외에도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박 선생이 있었던 것처럼, 이념에서 비롯한 고정관념을 탈피했을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버지와 평생 원수로 지내던 작은 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끝내 찾아온 것과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이념의 베일 속 좁은 세계가 아닌, 넓은 진짜 세상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작가의 애절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필자의 아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건강관리나 가족 관계는 뒷전이고 항상 열심히 돈을 버는 데만 열심이었다. 그로 인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날은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으며, 필자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몇 번이고 지루하게 이야기했다. 필자는 돈만이 삶의 모든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인식이 새겨져 있던 탓에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심한 날에는 작가처럼 왜 저런 사람 아들로 태어났는지 한탄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아 가족들 모두 충격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필자도 그날부로 작가처럼 점차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버지의 겉모습에 숨겨진 진짜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면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소홀하고 예민하게 굴었던 만큼, 가족들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적도 많았다. 필자가 고민이 있을 때 상담도 해줬고,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옆에서 손수 도와준 적도 많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벌어온 돈 덕분에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필자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인식하지 못 했던 것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통해서 바라보려 했던 고정관념과 인색하고 화를 잘 냈던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모 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감정적인 사고방식 탓이라고 분석한다. 그렇게 필자는 아버지와 어울리는 시간을 늘리며 함께 농담도 나누고, 선물도 서로 사주는 등 예전에는 잘 하지도 않았던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필자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닿았는지 아버지는 수술 후 현재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중인데,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증세이다.

현재도 사람들은 맹목적 편견, 보편적 원칙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자신에게 그러한 환상을 보여주는 베일에 써져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고정관념에서 비롯한 사고와 행동이 올바르다고 인식하면서, 몇 번이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독자들 모두 이 책을 통해서 사람을 이념을 통해서가 아닌,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념뿐만 아니라 여러 원칙과 관념에 대해서,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만사에 걸쳐서 적용돼야 한다. 대공황을 계기로 계획경제의 일부를 수용한 미국이나 대약진운동과 여러 실책을 계기로 시장경제의 일부를 수용한 중국처럼, 우리 모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인식이 올바른지에 대해 한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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