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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1(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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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조정인 님의 독서후기 '당신의 解放은 안녕하십니까'입니다.

 

당신의 解放은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던 사회, 이념의 대립과 사상의 갈등으로 가득한 시대. 그 현실을 살기 위한 아버지의 선택은 그저 신념이었다. 동무, 혁명, 평등 그 어떤 이상도 아닌 그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힘. 아버지의 사회주의란 그런 것이었다. 한 소시민으로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며 인생을 달려온 아버지에게 어느 순간 사회주의는 더 이상 신념이 아닌 생활이 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해방(解放)이 아니었을까.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른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아리에게 사회주의란 이분법적으로 사회를 나누는 그리고 화목했던 가정을 갈라놓은 그러한 이념(理念)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출소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도,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도,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당시에도 아리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에게 아버지는 가족을 내버리고 이념에 매몰된 사회주의자였을 뿐, 아버지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부터 그녀에게 아버지란 그 누구보다 낯선 이방인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난 이후에서야 아리는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사실은 아버지가 아닌 자신에게 질문(自問自答)을 던진 것임이 틀림없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빈소에 방문한다. 사촌오빠 길수의 인생을 통해 불운한 삶에 대한 연민을, 소 선생과 그 아들로부터 베푸는 삶에 대한 의문을, 마지막으로 학수의 질문을 통해 딸로서의 삶에 대한 후회를. 아리는 그들의 사연을 통해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에 발을 내디뎌본다.

동시에 아리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유년 시절의 행복을 반복적으로 회상한다. 사실, 그녀는 어른이 아닌 철부지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행복했던 기억만을 좇는, 다시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 그래서 아버지가 주는 사랑에 목마른 아이처럼, 애정이 결핍한 인생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리는 그 성장통에서 벗어나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저 사회주의는 나쁜 것이라 단정 짓고, 모든 실패를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던 아리는 마침내 한 어른(成人)으로서, 한 아버지의 온전한 딸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실, 아버지도 아리처럼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다. 아리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가을을 즐기던 나날을, 함께 달콤한 홍옥을 먹으며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던 그 시절의 행복을. 아리가 과거에 얽매여 억울한 나날들을 보냈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버지는 버텨왔을 것이다. 그저 표현하는 법을 몰랐을 뿐, 무뚝뚝한 모습의 아버지는 단 한 순간도 아리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딸이 박사학위를 받아 출간한 그 책을 마을 곳곳에 돌리며 자랑하던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父性愛)이었다.

그러나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무수히 많은 시간을 스쳐 보낸 아리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경험한 뒤에야 아버지의 사랑과 그 인생을 깨달았다. 아버지께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번 건네볼걸. 당신의 하루는 안녕(安寧)했는지 질문이라도 한 번 던져볼걸.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빠르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채, 아리는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과 무수히 많았던 기회들은 이제 아리의 마음 한편에 영원한 응어리로 남았다.

또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아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아홉 살 이후 완전히 등을 돌렸던 작은아버지까지 가족 모두의 후회와 화해의 과정을 담았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혁명가이자 빨치산의 동지였을지 모르지만, 가족에게는 연인이자 형제였던, 그저 사람이었던 아버지. 매 순간을 고통받고 억압받으며 살아왔던 아버지와 그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해방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상처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시대(世紀)의 잘못 때문이었노라고.

마침내, 아리는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해방시켰다. 자신의 오해와 아집으로부터. , 그들은 인생 내내 풀어내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서로를 해방하고, 다시 아버지의 해방을 응원하게 된다. 비록 그 생전의 삶은 다소 힘들고 어려웠을지라도, 죽음 이후 당신이 누릴 해방은 바라던 그 이상 그 너머라고. 또한, 동시에 나는 아리를 통해 나의 아버지를 잠시 떠올려본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해방을 지닌 채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마음속 영원한 응어리를 지닐 아리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 나는 전화기를 들고 나의 아버지께 당신의 해방(解放)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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