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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2(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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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박종호 님의 독서후기 '긍께 사람이니까, 사람이어서, 사람인지라'입니다.

 

긍께 사람이니까, 사람이어서, 사람인지라

 

한가지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초호화 크루즈를 타고 여행중이다. 애써 얻은 휴가의 기쁨도 잠시, 곧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집채만 한 파도가 애석하게도 배를 집어 삼킨다. 강렬하게 눈꺼풀에 내려앉은 햇빛은 당신을 흔들어 깨우고, 머리 위로는 갈매기가 비웃듯 끼룩되며 빙글빙글 돈다. , 내 휴가. 주위를 둘러보니 당신을 포함해 100명이 무인도에 표류해있다. 생존자 100명은 살아남았다는 환희에 젖을 새도 없이, 문득 걱정이 앞선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지 않은가. 뗏목을 만들어 탈출할까, 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까, 출근해야 하는데, 식량은 어떻게 하지.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물론 당신도 그렇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끼룩 되던 갈매기가 번쩍하며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잠시만 참아주시길).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사람들을 보고 갈매기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너희가 보았듯이 나는 초월적인 존재다. 내가 문제 하나 낼 터이니 그 답을 맞춘 사람은 무인도에서 탈출시켜주마이 난데없는 무인도 판 스핑크스는 재밌다는 듯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긴장한 표류인들에게 묻는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쉬운 듯 어려운 질문에 선뜻 대답이 망설여진다. 최소한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인 고아리와 그녀의 아버지, 고상욱은 아마 이런 걸로 고민하면 쓰겄냐 하며 금방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각각 그 답을 도출해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과정의 기록이다.

고아리는 빨치산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고상욱은 평생을 무인도 판 스핑크스의 물음에 대답을 하며 살았다. 그 대답 중 하나는 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백운산을 사방팔방 누비며 스핑크스에게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외친다. 이게 나의 대답이라고. 하지만, 그 대답이 만들어낸 집채만 한 파도는 크루즈에 타고 있던 고아리를 집어 삼켜 무인도에 표류시킨다.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떠는 고아리는 그 사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체념한 것처럼.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기 전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침전하여 맴돈다. 자신이 괴로운지도 즐거운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살아갈 뿐이다. 사람이니까.

고상욱은 무인도 판 스핑크스에게 이데올로기적 대답만 하지 않았다. 그가 삶을 대하는 행동 그 자체가 대답이었으며, 그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기 전까지도 꿋꿋이 대답을 철회하지 않았다. 언뜻 보면 고상욱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해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 무인도에서 탈출하였고, 그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무인도에 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에게서 마치 거울처럼 비춰보인다. 그도, 우리도 사람이어서.

그럼 고상욱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상욱의 삶처럼 죽음도 아이러니하다. 고상욱은 삶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해 삶을 그 답으로 삼았다. 고상욱의 죽음은 그 해방의 끝이자 시작이다. 바로 그의 딸인 고아리의 해방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남긴 강력한 힘이 그녀를 휩쓸어 무인도에 표류시켰다. 무거운 소금에 절여져 무인도 판 스핑크스의 답에 망설이고 있던 그녀를 탈출 시켜준 것은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참 아이러니할 수가 없다. 고아리는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지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아버지가 삶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그 흔적들을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한다. 그간 그녀가 본적이 없던 아버지의 흔적들을 말이다. 흔적들은 우숩기도 하며 슬프기도 하다. 또한, 숭고하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다. 그 끝에서 고아리는 깨닫는다. 아버지의 삶이 남긴 흔적이 가장 진하고 찬란하게 남아있는 곳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그녀도 아버지처럼 대답을 한 뒤, 끊임없이 그 삶을 증명하려 하지 않을까. 그녀도 사람인지라.

이제 이 책을 읽고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무인도 판 스핑크스는 가소롭다는 듯이 히죽 거린다. 아마 100명의 사람들이 모두 답을 바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인도에 표류된 게 오히려 좋다며 속으로 기뻐할 것이다. 갚을 빚이 있는데, 직장상사가 괴롭히는데, 일이 힘든데. 온갖 이유를 대며 숨을 것이다. 무인도에서 탈출하는 것이 더 무서운 사람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도 좋다. 고상욱처럼, 고아리처럼, 오히려 좋은 사람들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그 답을 생각해내면 된다. 그 시간은 내일 당장일 수도 있고 한 달 혹은 일 년 뒤, 어쩌면 죽기 직전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나도 모르게 답을 내고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그 과정은 <나의 해방일지> 속에서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되지 않을까. 마치 고아리처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무인도 판 스핑크스의 난데없는 질문 공세 속에 휘말린다. 이 질문은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봐야한다. 그것이 스핑크스에 발아래 놓인 사람에 숙명인 듯하다. 사람이니까, 사람이어서, 사람인지라.

다시 한 번 무인도 판 스핑크스가 묻는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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