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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2(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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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김자영 님의 독서후기 '항꾼에 살아왔던 시대의 아버지'입니다.

 

'항꾼에' 살아왔던 시대의 아버지

 

나는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은 책을 읽지 않는다. 남들이 다 읽는 책 궁금할 법도 한데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발동해선지 베스트셀러는 끌리지 않았다. 가족으로부터 추천받기 전까지 이 책 역시 그 많은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책과 친하지 않은 이가 먼저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니. 제목마저 신선했다. 어머니도, 아빠도 아닌 아버지의 해방일지’.

무엇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일까.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죽은 아버지가 무엇을 해방했단 것인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문장은 강렬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미사여구 하나 없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건조하지만 촉촉해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건식 사우나처럼 문장에 점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설 속 화자의 아버지는 전직 빨치산이었다. 단선 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아버지, 카빈 소총을 들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비던 아버지,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신 뒤 장례식장에 문상 온 이들이 그의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리고 그들이 아버지와 엮고 겪은 사정들은 주인공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하고 저세상 아버지와 화해하게 한다.

내가 주인공이었어도 아버지 고상욱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매료되어 그 이념을 실천하고자 빨치산이 되었다가 온갖 고생 끝에 가정을 이루어 산 사람. 그쯤 되면 신념이고, 이념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 아니던가. 주인공 아버지는 달랐다. 산을 내려와서도 그의 이념 투쟁은 계속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죽은 이념이 아닌 살아있는 신념으로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대했다. 비록 그 정성의 끝이 딸아이에게 벼룩을 옮겨주고, 빚을 떠안게 되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딸로 살아낸 세월이 억울했을 터다. ‘의 사정 헤아리고자 제 일처럼 달려 나간 아버지 대신 집안 살림 오롯이 살아낸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딱했을 것이다. 딸에게조차 냉정한 외모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 아버지, 빨치산의 딸이란 이유로 전날 결혼이 취소되는 파란만장한 경험을 준 아버지. 다른 모든 이들에겐 다정하지만 집안 사람들에겐 살가운 웃음 아꼈던 아버지만 알았더라면 주인공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치열하게 자신의 이념을 몸으로 살아낸 분이었다. “오죽흐면당신을 찾았겠냔 말을 남기고 한달음에 달려가 시신을 수습하고 보증을 섰다. 암내 때문에 결혼 못 하겠다던 이를 병원에 가 수술받도록 의사를 소개하고, 모두가 이단이라 욕하던 이의 종교를 인정해 줬다. 그뿐이랴. 십대 소녀의 담배 친구가 되어 학교를 벗어난 아이의 꿈을 응원했다. 장례식장에서 쏟아진 아버지의 미담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 끝자락 어디쯤 주인공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낸다. 그 사랑은 이해의 끈으로 연결되어 아버지의 마지막을 가장 아버지답게 보내드리게 한다. 어쩌면 마을 곳곳에 아버지의 뼛가루를 뿌리며 초혼제를 드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대목에 이르니 먹먹히 눈물이 났다. 글은 분명 건조하게 이어지는데 글 안에 녹아 있는 그리움과 설움, 아쉬움, 자랑스러움이 켜켜이 밀려오는 듯했다.

아야, 오죽하면 글겄냐.” 사람이 살아가며 이렇게 타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가 있을 거야, 사연이 있었겠지싶다가도 못내 서운하고 억울한 게 인생살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는 신념을 온몸과 시간으로 실천하며 살다가 본인이 입말대로 갔다. 누구도 배척당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고 그 꿈을 이루다 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 안에 갇히지 않고 신념을 실천으로 해방시킨 것이다. “자네 혼자 잘 묵고 잘 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 호통을 치던 아버지가 요즘 세상에도 필요해 보인다. 다들 혼자서 잘먹고 잘살겠다고 아우성이고 그것이 최고선처럼 추앙받는 세상이다. ‘항꾼에잘먹고 잘살 수 있는 세상은 이념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신념을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낸 주인공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하지 않을까.

작가는 실제 아버지를 모티브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빨치산의 딸로 태어나 여러 억울함과 설움을 겪었을 테지만, 결국 빨치산의 딸이어서 성공한 작가가 된 아이러니. 인생 역시 아이러니의 연속 아닐까. 아이러니한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환경이 문제고, 교육이 문제라 하지만 결국 나 한 사람이 전부를 바꿀 수 없다면 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내 가까운 데부터 살피고 싶다. 내 마을부터 살피고 싶다. 내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멀리 떨어진 곳에 지내는 내 아버지까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봉인돼 있던 내 아버지와의 추억을 소환시켜 주었다. 70년대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억척스럽게도 일하여 가족들을 부양했던 내 아버지. 그 시절 아버지는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가족에겐 살가운 말조차 아끼던 분이셨다. 어머니 먼저 보내시고 홀로 계신 아버지에 대해 나는 어떤 걸 기억하고 있었나 되새겨 보니 막상 잘 생각나질 않았다. 어떤 위대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던 분도 아니고,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 지지고 볶으며 부모님과 자식들 건사하기 바빴던 아버지. 그런 평범한 아버지들이 모여 우리의 지금을 이룬 것일까. 모두가 다 혁명가는 아니였지만 혁명의 시대와 폭압의 시대를 견디고 건너온 아버지. 그 묵묵한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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