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채해아
안녕하세요? 초면에 이렇게 제 일기장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부끄럽고도 죄송스럽네요. 여러분은 일기를 쓰시나요? 어떤 내용을 기록하시나요. 저는 하루 중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 깨달음이 있는 순간,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순간 등을 적는답니다. “그냥 다 쓰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셨죠? 의외로 일기장에 적을 순간들 없이 하루를 보내거나, 놓치기 십상이라 제 일기장은 아직도 빈 곳이 많답니다.
제게는 이 책의 주인공 ‘지은’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민이나 상처를 들어주는 재주가 있어요. 어쩌면 지은과 많이 닮았죠.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면서 어려운 일이에요. 한때, 의사를 꿈꾸던 제가 정신과는 선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분명한 건 본인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상대를 신뢰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자체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듣고, 품에서 쓰다듬어주기도 한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누가 안아주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찾은 마음 세탁소가 제 일기장이랍니다.
이 일기장의 시작은 어릴 적, 냉장고에 붙어있는 작은 바구니 속 쪽지였어요. 한글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쯤, 동생들이 생겼어요. 어린 마음에 동생들 몰래 부모님과 비밀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편지(라 하기도 뭣한 편지)를 쓰기 위해 밤이 되길 기다렸고, 답장을 읽기 위해 아침이 오길 기다렸어요. 편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마음 깊이 자리해 지금도 편지를 좋아합니다. 대개 편지는 간직하기 마련이죠. 손끝에 꾹꾹 눌러 담은 내 마음이 편지라는 수단으로 소중히 간직되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게 좋거든요. 나 혹은 어떤 대상에게 편지를 쓰기도 해요. 특히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쓴 편지는 주지 못하니까. 어쩌면 편지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솔직하답니다.
제 마음 세탁소, 그러니까 일기장의 첫 번째 페이지에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요. 내가 선택한 학과에 나는 정말 흥미를 느끼고 있나? 나는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 내 인생을 뒤집을 질문들 사이사이에 학회장으로 출마하고 싶은 마음, 캐나다에 유학 가고 싶은 마음, 포트폴리오 공모전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 실험실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등 고민하고 선택할 게 너무 많았어요. 29년째 내정자가 내려오는 학회장 선거에 출마해도 괜찮을까? 역대 학생회장은 전부 남자였는데…. 떨어지면 엄청 부끄럽겠지. 유학 가보고 싶은데… 나중에 나 혼자 학교 다니면 어떡하지? 포트폴리오 공모전 나갔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내 시간도 아깝고, 발표도 해야 하는 건 부담스러운데. 실험실에 들어갔다가 성적 떨어지면 어떡하지….
우리는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는 것 같아요. 설령 누군가 실패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얕볼지라도 우리는 경험하고 배웠으니 성장하면 돼요. 넘어지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죠. 남의 시선을 눈치 보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선택하세요. 저는 고민하던 모든 것을 도전했어요. 그리고 결과를 후회하지 않죠.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한 선택을 후회로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선택한 용기가, 최선을 다한 내가 중요한 거예요. 오늘을 살라는 말이 있죠? 오늘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선물이에요. 아무리 후회해도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니까요.
언젠가 분노가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쓴 과거의 편지를 보는데 마지막 한 줄에 ‘오늘 돌체라떼 먹어서 봐준다.’라고 쓰여있었어요. 우스운 일이지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체라떼를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제가 떠올랐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일기장에 행복했던 일, 감사했던 일을 더 많이 적으려고 노력해요. 행복은 천지에 있어요. 행복과 감사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면요. 카페에 가서 방금 나온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랑 수다를 떨었어요. 이 자체로 행복한 일이죠. 그렇지만, 걸어가기 좋았던 날씨, 안전한 도착, 카페 갈 시간적 여유, 좋아하는 뜨거운 커피, 이 모든 걸 함께 해준 친구. 이 모든 것에 감사해요. 여러분도 그동안 놓쳐버렸던 행복을 찾아보세요.
내 마음에 행복, 감사를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과 감사를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돼요.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이 편안했다는 것은 네가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뜻이겠지. 행복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행복했어. 모든 순간이 감사했어. 내 여린 마음을 예민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다정히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억지로 웃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위로해 줘서 고마워.” 이제는 전하지 못하는, 쉴 새 없이 좋아했던 그에게 전하지 않은 편지가 있네요.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어디에서도 행복과 감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사랑이 가득한 당신일 거예요.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어요. 내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신비한 힘은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기와 특권이래요. 나와 내 삶 속 행복과 감사로부터 사랑하는 편지 어떤가요? 나를 위한 편지, 어쩌면 나와 관계된 어떤 이를 향한 편지까지. 이 순간의 사랑을 담아 보세요. 붙이지 않을 편지도 괜찮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날씨만큼 흐렸나요? 화창하진 않았대도 자그만 행복이 깃들었길 바라요.
마음 우체국, -주인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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