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룩에서 우리의 얼룩으로
손민정
모든 사람의 상처는 저마다 다른 모양이지만, 그 상처가 남기고 간 외로움은 비슷한 방식을 띠고 있다.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마음의 생채기를 극복하며 대안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음 세탁소에 찾아온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삶의 불행을 안고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들이 남긴 흔적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연자는 처음 걸어보는 꽃길과 처음 받아보는 환대가 낯설어 입구에서 머뭇거린다. 연희 또한 세탁소에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오랫동안 멀리서 지켜보다 용기내어 발을 들인다.
모두 처음에는 상처 받은 마음에 단단한 자물쇠가 걸린 채다. 하지만 아픔을 나누고 빨래처럼 마음의 얼룩을 지우면서 마음 세탁소 주인인 지은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여기며 각자의 삶에 스며든다. 때로는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얼룩을 서서히 지워간다. 마치 메리골드의 꽃말처럼, 슬픔과 걱정의 자리를 대신할 희망과 용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대안가족의 울타리가 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마음의 상처를 지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이미 책과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 소재이다. 대표적으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있다. 이 영화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사랑한 기억을 사설 업체를 통해 지운다.
하지만 기존 이야기들에서 아쉬웠던 것은 상처와 함께 기억이 지워진 후 인물에게 남은 정서의 공백이었다.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을지언정 고통의 기억과 함께 행복의 기억도 함께 사라진 것이 과연 인물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은 기억과 경험으로 구성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음 세탁소는 상처의 얼룩을 지운 그 빈자리에 새 살이 돋고 새 희망이 깃들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혼모로 아이를 혼자 키워온 연자와 아빠가 없는 재하를 비롯한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대안가족 공동체를 구성한다. 소설 중 우리분식 사장님의 말처럼 “가족이라는 이유로 기대하고 상처받고 상처 주는 그런 가족”이 아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가족의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설들에 비해 더욱 진보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마음의 상처를 지우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은 이들이 세탁소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뤄 적극적으로 삶을 이어간다.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게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다시 한 번 타인과의 신뢰와 사랑의 가능성을 믿게 되는 것이다.
‘나’의 상처가 아닌 ‘우리’의 상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개인의 경험을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지만 기존의 세탁소 고객이 다음의 세탁소 고객을 데려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사건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나아가, 재하가 해인과 연자를 세탁소로 데려옴으로써 서로 다른 상처들의 연결성과 유기성을 높인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외로움이 한 곳에 응집된다. 그리고 그것을 다함께 이해하고 공감하며 눈물 흘려주는 과정에서 집단치유가 일어난다. 상처를 함께 극복하며 희망으로 도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은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은 두 가지이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첫 번째, 꿈꾸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두 번째이다. 지은은 첫 번째 능력은 마음 세탁소를 통해 실현하고 있었으나, 두 번째 능력에 대해 항상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세탁소에서의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두 번째 능력이 사실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믿게 된다.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기와 특권”이라고 말이다. 단순히 세탁을 통해 마음의 얼룩을 지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상처의 얼룩을 지운다고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상처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그려갈 수 있다.
요약하자면,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대안가족 공동체를 통해 공감과 치유의 과정을 제시하며, 개인의 상처를 집단의 경험으로 확장해나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상처를 나누고,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상처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성장하도록 돕는 발판이 된다.
특히, 상처를 지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찾아가며, 이를 통해 인물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모습은 치유의 궁극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상처 극복을 넘어,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 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개인에서 공동체로, 고립에서 연대로 확장되는 치유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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