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24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2(시도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L 2025. 2. 6. 16:07

본문

독서후기 대상도서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구겨진 마음을 다리는 방법

강세빈

 

그냥, 타다 남은 재와 뒤섞인 잔불 같은 마음을 갖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어서. 혼자서 납득과 부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하루 종일 널뛰는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잦아서, 그게 싫었다. 그래서 꺼지지도, 맹렬히 타오르는 것도 아닌, 그런 잔불 같은 마음을 갖고 싶었다. 나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들은, 어쩌면 마음이 그것을 나쁜 일로 받아들여서, 사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들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우울해져서, 끊임없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을 멈췄다.

그런데 어느 날 눈물이 났다. 일상생활 속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어떤 감정들은,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빨랫감처럼 내 마음의 구석에 처박혀 해묵은 것들이라,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원인이 되는 기억이 어느 시점의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 감정과 마음을 순순히 인정한 적이 없음을, 그저 시선을 돌려 회피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 순간더는 버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둑이 터지고, 해묵은 감정들이 일상에 스며들고 나서야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원인은 별 것 없었다. 그냥 핑계가 많았다. 타인으로 인해 기분 나쁜 일에그럴 수도 있지.’ 내가 예민했던 것으로 책임을 돌린 뒤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구겨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관계를 끊어냈다. 결국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신뢰를 잃었다.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하나 못하고, 멍청하게.’ 내가 솔직하지 못했던 그 모든 순간이 억울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나를 미워하니, 자연히 타인도 미워졌다. 언젠가 나로서는 드물게, 학교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때.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너에게 상처 준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는데, 왜 너만 그 기억을 붙잡고 괴로워하니? 그걸 잊지 못하는 네가 안타깝다.” 그 말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떤 의도로 건네진 건지 알고 있다. 그런데 더 이상 이해하기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언젠가 내게 감정적 지지가 필요한 순간에, 그 어떤 지지도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과거의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악심에 가까운 결심을 품고, 그릇된 부채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동안, 미움과 원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마음에도 관성이 있어서, 내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길 거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득내가 왜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 때면 너무 괴로워졌다. 동시에 그 모든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하는 나를, 이런 생각을 갖게 한 사람과 일련의 사건들을 원망했다.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현재에 덧씌워지고, 더는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원망하는 게 지칠 만큼 충분히 원망했다. 

그러나 그 어떤 평온도 찾아오지 않았다. 평온은이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 마음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는 순간 찾아왔다. 답은 간단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대왔던 핑계를 모두 거두고, 솔직하게 그때 느꼈던 감정을 직시하기. 상처받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우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상처를 상처로 놔두기. 그냥, 이 모든 일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그렇게 억눌러 구긴 마음을 다렸다.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생각과 감정들을 현재에 덧씌우지 않게 되자, 그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에 말이야. 후회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마음에 상처로 새겨져 굳어버린 얼룩 같은 아픔을 지울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해질까?’ 지금의 나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오.’라고. 삶을 살아가며, 충분히 후회할 수 있다.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후회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 마음과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만은 나에게 솔직하고 떳떳해야만 한다. 미워하고 싶다면 충분히 미워하면 된다. 미워하고 나서,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하면 된다.

한창 구겨진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던 때, 내게 상처 준 사람과 만나야 할 일이 있었다.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는 관계를 끊어왔으므로, 처음이었다. 상처 준 사람을 다시 마주하는 일은. 그런데 그날, 햇살을 받으면서 이야기하고, 걷던 그 순간. 햇살은 따뜻했고, 눈부셨다. 이 순간을 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밉고 원망스러울 상대와 함께하면서도 분명 그랬다. 혼란스러웠다. 그때는 애써 부정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그 순간, 분명히 나는 즐거웠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일찍 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나의 감정을, 마음을 외면하고 억누르는 것으로 구겨왔다. 마음이 구겨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충분히 아파하고 고민했기에, 그 모든 순간을 겪었기에, 지금의 답을 찾아낸 내가 있다. 마음세탁소가 없이도 구겨진 마음을 다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음에 이는 모든 파동을,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기. 그리고 인정하기. 그렇게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실의 순간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