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으로 더 따뜻해진 나의 옷, 나의 인생
정일숙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옷을 세탁하는 것은 주부인 나에게 익숙한 일상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옷에 묻혀온 얼룩만 보아도 나는 이 녀석들의 얼룩 제조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급식을 먹다가 김치 얼룩을 묻혀온 녀석,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만 넘어져 흙탕물을 잔뜩 묻혀온 녀석,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먹다가 초코얼룩을 묻혀온 녀석, 미술시간에는 옷에다 그림을 그린 것인지 소매 끝에 물감을 잔뜩 묻혀온 녀석까지 나는 빨래 얼룩만 보아도 그날 그날 아이들의 히스토리를 짐작 할 수 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자 한 두 가지, 아니 많게는 수십 가지의 얼룩과 주름 그리고 심지어 옷이 헤어져 찟어지기까지 한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처음 깨끗한 옷에 얼룩이 생겼을 때는 정말 너무 속상하고 아프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의 이런저런 얼룩이 덧칠해지고 깊거나 얕은 주름과 벌어진 옷을 열심히 여며 꿰멘 자리까지 더해지면서 옷은 더할 나위없이 낡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면 예술가가 만들어낸 작품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읽었을 때 마음의 상처와 인생의 얼룩을 깨끗하게 지워준다는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주인공 ‘지은’의 능력이 너무 부러웠다. 죽지 않고 살면서 사람들의 상처와 얼룩을 지워주며 살아가는 지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은 참 좋은데,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이라니, 너무 위험하고 강력해요.”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해 부모님이 대화하는 것을 들은 지은은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만다. 지은은 사랑하는 가족을 찾기 위해 마법의 명분은 외면한 채 자신을 위해서만 능력을 사용한다. 그러다가 “그런데 두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먼저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제대로 익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일을 하고 나서 꿈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사용해야 해요”라는 아빠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후 메리골드 마음세탁소를 차리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은은 여러 명의 상처와 얼룩을 가진 이들을 만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돈을 벌어야 하는 연자씨(엄마)가 일을 나가면서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는데, 그때가 가장 공포스럽고 불안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재하. 또한 영화를 만들게 됐던 날도, 영화가 사랑받았던 날까지, 영화와 관련된 모든 씨앗을 지우며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했으며 더불어 엄마인 연자씨의 아픔도 함께 지우고 싶어 했던 재하.
인플루언서로 살던 모든 삶을 지우고 싶어 했던 은별. 화가 나도 슬퍼도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타인의 시선에만 몰입해서 살아왔던 삶이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희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었지만 결국 희재에게 배신당했던 연희.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자신의 희생을 마주할 때 두렵고 불안한 마음까지 없애고 싶어했다.
잘난 부모님과 형 때문에 늘 비교당하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든 영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안도했던 날들과 가족들 때문에 생긴 시간에 대한 강박을 지우고 싶어 했다. 영희에게는 타인의 인정과 자신보다 잘난 가족들이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나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이 되었던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연자이다. 아마도 연자가 실제 인물이었다면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언니였을 것 같아 더 정이 느껴졌던 것 같다. 연자는 작업반장의 꼬임에 빠져 재하를 임신하게 되지만 결국 버림받고 재하를 홀로 키우게 된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아이를 집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는 엄마의 심정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연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셋을 키우면서 나도 나름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 이제는 나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내가 인생을 정말 가치있게 살아냈다는 남모를 뿌듯함이 생기게 되었다. 연자 역시 서럽고 힘들었지만 아들 재하가 있기에 고통스런 기억조차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 했을 것 가타. 이런 감정은 자녀를 키워본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책이 중반을 넘어 결말로 갈수록 나는 처음 부러워했던 지은이의 능력이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갈수록 아픔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능력.
결국 인생은 살아갈수록 자신의 실수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닌 비록 비뚤어지고 초라하지만 자신의 아픔까지 품고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
내 인생의 옷은 목은 죽 늘어지고, 여러 군데 얼룩지고 색은 바라고 소매 단은 닳아지고 군데군데 바늘로 꿰매었어도 전보다 더 커진 사랑을 충전재로 넣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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