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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명으로 간행된 첫 문집, 도은선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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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0. 7. 3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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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명으로 간행된 첫 번째 문집 도은선생집

도은선생집(陶隱先生集)은 여말 선초 고려삼은(高麗三隱)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도은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시문집이다. 조선 태종의 명으로 1406년 간행되었고, 조선 건국 후 왕명으로 간행된 첫 번째 문집이라는 점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도서관 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이 2006년 보물 제1465호로 지정되었다.

 

이숭인은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문장이 뛰어나 우왕(禑王) 때 명나라로 보내는 많은 외교문서를 지었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중국학자들과 교유하며 문명을 떨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작성한 외교문서 중 표문(表文)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을 탄복시켰다고 전한다.

 

공양왕(恭讓王) 때 정몽주(鄭夢周)가 선죽교에서 살해당한 뒤 그 일당으로 몰려 전라도에 유배되었고, 조선 건국 후 정도전(鄭道傳)이 보낸 황거정(黃居正)이 나주(羅州)에 와서 그의 등골에 매질을 하여 남평(南平)에서 죽으니, 이 때 나이 46세였다.

 

정도전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태종(太宗)1406년 이숭인을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문충(文忠)’ 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만들어 세상에 반포하도록 명했다. 이에 변계량(卞季良)이 유고(遺藁)를 수습하여 편차(編次)하고, 권근(權近)이 서문을 붙여 문집을 간행했다.

 

태종은 문집 간행을 명한 것은 이숭인과의 각별한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태종은 조선의 국왕으로는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태종은 16세 때인 1382(우왕 8)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을 때 시험을 주관했던 사람이 바로 이숭인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과거 시험을 주관한 자를 좌주(座主), 합격자를 문생(門生)이라 하는데, 문생은 좌주를 스승으로 여겼다.

 

권근의 서문에는 선생이 성균시를 관장했을 때 우리 주상전하(태종)가 잠저(왕이 되기 전)에 있을 때 그 시험에 들었기 때문에 왕위를 잇고 난 뒤에도 경연때마다 감반의 옛 고사를 생각하여 슬퍼하곤 하셨다. 그리하여 선생을 추증하고, 그의 두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게 했다. 이와 함께 선생의 유고를 간행하도록 명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감반의 옛 고사란 상나라 무정이 임금이 되기 전 감반에게 글을 배웠는데, 임금이 된 뒤에 그를 등용하여 정승으로 삼았다는 고사로 사제관계를 이야기 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도은선생집은 모두 5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까지는 시집, 4~5는 문집이다. 권수(卷首)에는 1385년 명나라 주탁(周倬)의 서문, 정도전의 서문, 1406년 권근의 서문 있고, 권말(卷末)에 이색(李穡)의 발문과 1385년 명나라 장부(張溥)의 발문, 1389년 명나라 고손지(高巽志)의 발문이 있다.

 

명나라 학자들의 서문과 발문은 이숭인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거나, 명나라 사신이 고려를 방문했을 때 받은 것이다. 1406년 권근의 서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서문과 발문은 모두 이숭인이 직접 받은 것으로 생전에 문집의 편찬을 위한 대략적인 구성은 마무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물 제1465호로 지정된 판본은 중국학자들의 서문과 발문이 누락되어 있고, 권수에 위치한 정도전의 서문이 권말 이색의 발문 앞에 붙어 있는 불완전한 형태의 판본이다. 도서관 소장본은 보물로 지정된 판본과 비교할 때 출판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가치를 높이 평가 받았다.

 

20207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고, 곧 이어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신청되었다.

 

도은선생집 전시 안내

- 장소: 중앙도서관 5층 고문헌 자료실

- 전시기간: 2020. 8. 1. ~ 8. 31.

- 관람시간: 9:00~18:00(토요일, 점심시간 제외:12:0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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