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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3(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1. 2. 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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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

2020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현재환 님의 독서후기 '가장 위대한 스승, 가장 위대한 신'입니다.

 

가장 위대한 스승, 가장 위대한 신

 

  우리는 지독히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관측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한한 우주 속의 티끌만도 못한 지구라는 별 위에서, 정치, 종교, 문화, 경제 등 수많은 전장에서 수많은 강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뿜어내는 시대. 우리는 그러한 막장 영화의 한 복판에 내던져진 자그마한 사람이다. 세상은 나의 목소리에 기울이지 않고, 나의 행동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심지어 당장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세상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잘 돌아만 갈 것 같아 보인다. 유래 없는 풍요와 쉴틈 없는 경쟁은 우리들을 서서히 무대 밖으로 밀어내고, 찬란한 조명을 한 몸에 받는 인기 배우들의 공연을 그저 지켜보게만 하고 있다. 이것은 이원론의 세계이며, 동시에 실재론적 세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의 자아와 세계는 분리된다. 그리고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선과 악, 남자와 여자. 세상은 두 갈래로 나뉘고,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위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세계가 되었다.

한편, 여기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들이 가르쳐준 지혜이며, 우리가 어느새 잊어버린 반쪽의 세계이다. 그것은 일원론의 세계이며, 동시에 관념론적 세계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자아와 세계는 하나로 합쳐진다.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주와 나는 하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논제로부터 시작한다. 범아일여, 신(우주)은 내 속에 있고 내가 신(우주)이 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우주에서 음과 양, 선과 악이 공존함을 깨닫는다. 그것들은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나는 그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절대자에게 복종하며 헌신하는 삶 대신 내면 속 심연에 잠겨 사유하고 깨닫고, 마침내 내가 신(우주)이 되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로 인해 세계의 중심이 서쪽이 된 후에 우리는 이원론적 세계관 속에서 사는 것이 지극히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위대한 성현들의 지혜는 서양에도 문을 두드렸다. 특히 칸트는 관념론을 제시하면서 서양 철학을 크게 뒤집어 버린다. 바로 세계가 자아보다 우선한다는 기존의 개념을 뒤집어 자아가 세계보다 우선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이다.

오랫동안 일원론의 세계는 과학계에서 완전히 배제된, 그야말로 신비주의적인 영역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양자물리학이 발견되었고,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우주의 법칙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동이었던 빛(광자)이 관측하는 순간 입자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보는 세계와 보지 않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물음을 던져야만 했다.

 

  작가는 이원론이 옳다, 일원론이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세계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를 제기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규정짓는 것들을 과감하게 부술 수 있어야 한다. 지구가 사실 둥글다는 이야기처럼,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돈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기존의 것들을 의심해보고 검증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유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되묻는 자유로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데 있어서 오래된 스승들의 지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가 간략하게 소개한 스승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관은 나의 감옥이다. 누군가는 기독교의 감옥에서, 누군가는 불교의 감옥에서, 그리고 이슬람교, 힌두교, 유물론, 허무주의, 실용주의, 과학 주의자의 감옥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감옥에서 그 세계만이 전부라 믿으며 살다가 죽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갖는 숙명인 것일까? 다 더 넓은 감옥에서 살 수 있지는 않을까? 눈을 감고 떠올려볼 수 있다. 불교라는 방에서 나와 기독교라는 거실에 있다가 이슬람교라는 주방에서 아침을 먹고, 과학주의라는 정원에서 실용주의 친구를 초대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다. 하나의 세계관을 고집하여 좁은 감옥 속에서 사는 것보다 다양한 세계관을 배우고, 체험하며, 받아들이면 더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즉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나를 바꾸면 된다.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우리 내면의 호수에 비춰진 것이니, 일원론의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신(神)이 만든 세계에서 변두리에 떠도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각자의 세계관을 이끄는 가장 특별하고,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神)’이다.

 

  작가는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한다. 세상의 목소리를 의심하고, 시간을 만들어야 하며, 그 시간을 이용해 내면의 시간을 갖고, 내면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침묵의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계획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세계가 우리 스스로의 마음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를 깨닫게 되리라고 작가는 확신한다.

 

  나는 여전히 빅뱅 이전의 제 일자를 믿으면서도 신을 믿지 않는 평범한 무신론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에 흥미로워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나를 옭아매는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나의 깊은 곳에서 날개를 웅크리고 있는 위대한 것이 더 커다란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날아오를 것이다. 나 자신(神)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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