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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2(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1. 2. 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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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

2020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홍세의 님의 독서후기 '제로에서 시작된 인류의 의문과 인류 문명이 내린 답에 대한 고찰'입니다.

 

제로에서 시작된 인류의 의문과 인류 문명이 내린 답에 대한 고찰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삶에 대한 의문이다. 동시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우리가 꿈으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하는 의문이다. 전자는 뭔가 철학적 고찰이지만, 후자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부자, 명예, 인성이 충만한 미래를 그린다. 그 꿈의 근본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는 누구이며, 이 삶의 올바른 방향(진리)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즉, 이것들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성경의 발자취와 불경의 가르침, 저명한 철학자들의 깊은 고찰과 우리 주변 웃어른의 삶의 경험에 답이 담겨있다. 다만 그것을 조합하여 하나의 거대 사상으로 받아들이진 못한다. 그것들은 거대한 사상의 퍼즐 조각이다. 분명히 ‘답’은 맞지만, 한 곳에 모아 조립하지 않으면 큰 결과물을 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삶에 치여서 그저 파편만 가슴에 안은 채로 살아간다. 끝내 삶에 뛰어든 우리는 매 순간 의문의 답을 찾지 못해 갖게 된 상처를 끌어안고 고뇌하고, 심리학 책을 들여보고, 소위 말하는 힐링을 위한 여러 취미로 자신을 위로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여러 파편을 한 곳으로 모아 그림을 이루고 있다. 우리들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의 사상은 심연처럼 깊지는 않지만, 하나로 조합된 거대 사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가진 의문의 근원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인 것이다.

 

  책에 담긴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고민하는 이 근본적인 의문들은 이미 인류 문명의 태초부터 고민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의문의 답은 이미 인류 문명의 태초부터 찾아냈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보편적 가르침’이자 ‘거대 사상’이다. 인류는 모든 문명의 순환에서 이 의문을 품음과 답을 찾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부터,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도착했을 때 손에 쥐어진 <베다>와 <우파니샤드>, 동양에는 노자의 <도덕경>이,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성경>들과,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 그리스부터 시작된 철학자들의 고찰들이 그것이다. 다만 이러한 깨달음이 너무나도 반복되어, 니체의 말을 빌자면- “진리가 땅에 무수히 떨어져 있고, 모두가 진리를 찾고 있지만, 그 누구도 땅에 떨어진 진리를 주우려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든 사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회의 규칙을 만들어내었다. 개개인 모두의 행복을 위한 규칙이라기보다는,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희생의 틀이었다. 그 사회의 틀에서 대다수는 소수의 권력을 위해 희생되었다.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답을 찾으러 떠난 이들을 염세적이라 부르고, 그들을 사회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고 배격했다. 정녕 제 뜻을 따라 사회를 떠난다는 이들을 가두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사회화된 종교의 테두리 안으로 몰았다. 이것이 가장 사회적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염세적일 것같이 보이는 종교가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그들은 사회에 의해 염세(厭世)를 허락받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염세적이지 못하다. 본질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현실의 예수가 사도 바울에 의해 형이상학적인 예수로 변한 것처럼. 사회를 유지하는 권력은 ‘돈’으로써, 돈이 가진 힘은 막강해졌다. 우리는 예전의 답은 잊어버린 채 엉뚱한 ‘돈’에 우리의 답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그것이 답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순간마다 잘못된 진리에 의해 상처 입는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내 우리는 누구이고 진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은 망각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더 많은 재산을 가지는 것이고, 화려하게 소비하는 것이며, 그것을 과시하는 것이 되었고 그것이 진리이자 행복이 되었다. 그 필사적인 사회에서의 투쟁 끝에 남는 상처는 부끄러운 나약함의 상징이며, 흉터는 자신이 얼마나 자수성가했는지 자랑하는 용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것들이 우리 삶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이 틀 안에서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위대한 스승, 즉 선각자들은 이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설파해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 다만 그것이 하나의 큰 그림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을 모아 그림으로 만들 생각보다는 그저 퍼즐 조각을 갖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오직, 우리가 느끼는 단 고귀함의 이상향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거대 사상을 통해 설파한 것이다. 오직 인류만이 사랑을 온전하게 표현하고 지속해나가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나 자신을 나누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유한하지 않고 무한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위대한 스승이 닦아놓았던 길을 걷는 것이다.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이 깨달은 그 길을 마침내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시발(始發)점으로 가치 있다. 이 작은 그림을 단순히 전부로 여기지 말고 앞으로 더 나아갈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든, 불경이든, 도덕경이든, 철학책이든 상관없다. 다만 이 퍼즐을 전부로 생각하지 말고 멈추지 말라, 우리가 보고 느껴야 할 것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온전한 의미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과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다. 진리는 사랑이다. 그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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