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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1(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1. 2. 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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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

2020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최영태 님의 독서후기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하여'입니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하여

 

  나에 대해 서술하시오.’ 학창 시절부터 가장 고통스러운 물음이었다. 자기소개서에서 이 문구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소설이 되어가는 것을 보니 자괴감이 깊어져만 갔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 나름대로 각 상황에서 나의 행동, 생각을 열거해 종합해 보았다. 놀랍게도 일관성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성실하다는 표현을 쓰려고 하면 어느새 할 일을 뒤로한 채 핸드폰 화면에 동영상을 보며 웃고 있었다. 정직하다는 말을 쓰려고 보니 거짓말하는 나를 발견했다. 세계는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라고 요구하는데,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책과 여행으로 나를 정의해보자고 다짐하여 동서양 고전을 닥치는 대로 읽어보고, 해외여행도 혼자서 다녔다. 하지만 배경 지식 없이는 고전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머나먼 서양 고전보다 동아시아 스승들의 동양 고전을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해외여행에서 새로운 환경에 의도적으로 나를 던졌지만 소극적이던 평소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나의 특성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마치 뜨겁고 황량한 사막 위에 ‘나’라는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가끔 오아시스를 발견했다고 착각했지만 결국 신기루였다. 이런 끊임이 없는 갈증에 목이 타던 도중, 도서관 공지에 이 책이 보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곧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을 말이다.

 

  범아일여, ‘무관해 보였던 세계가 나와 하나라니.’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양자역학 같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거시 세계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고정된 내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우주론에 대해 접하니, 관찰자에 따라 거시 세계가 달라진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나와 세계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불완전한 나를 이원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SNS에 몰두하여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목매었다. 이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에서라도 인정받기 위해 과시하지만, 내가 곧 세계임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결국 이 욕구를 어느 곳에서도 충족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사랑하려면 자신을 먼저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단지 격언으로 보이던 문구들이 색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아시스의 물 내음이 나는 듯했다.

 

  이렇게 세계와 나에 대한 관계를 막 음미하던 도중, 불교의 공(空)으로 ‘나’라는 오아시스의 형태를 보았다. ‘텅 비어있다.’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5가지로 나뉜다고? 그토록 원했던 절대적인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꽤 허무해 보였지만,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실체가 없는 자아에 집착하여 나와 세계, 즉 주객을 분리하니 차별이 발생한다. 이 결과 많은 번뇌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현상이며,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정 불변한 나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부터 현재의 나를 팔정도에 맞게 가꾸어 나가면 이게 ‘나’ 아닌가? 고정,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낙담하여 변화를 애써 무시하지 않았는가? 공(空)은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에 신대륙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모든 것이 식의 작용이니, 나의 마음과 의식을 바꾸면 세계도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휘황찬란한 물질세계는 나와 무관해 보이고 스스로 왜소한 것처럼 느꼈지만, 결국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고 외부의 온갖 욕망도 사실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내가 명품이라고 의식해야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존재하지 않는 홀로그램 새장에 나를 가두지 않고, 훨훨 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허황된 틀에 갇혔던 이전과 달리, 지금 이 순간에 범아일여를‘나’와 접목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자주 긴장하며 말투도 어눌했다. 성격 틀로 착각하여 나의 특성이라고 살아왔지만, 모든 것이 인연라면 지금이라도 좋은 원인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좋은 원인으로써 기초교육원 말하기 대회에 참여해, 말하기에 자신감을 높이는 결과를 얻고 싶었다. 나와 무관해 보였던 대회가 하나로 일치되는 순간이었다. 대회를 준비하는 도중 영상을 녹화하여 말하는 나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화면 속의 나는 말할 때 자주 끄덕이고, 말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러니 발음이 뭉개져 어눌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왜 급했는지 고민해보니 스스로 어눌하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던 것이다. 즉 내 마음이 나와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어눌하다는 집착 대신, 이제 좋은 원인으로서 좋은 종자를 저장하기 위해 복식 호흡과 느리게 말하기를 연습했다. 연습을 반복한 후 다시 촬영한 영상을 보니, 다른 세계를 관측할 수 있었다. 여유 있게 말하니 발음도 이전보다 또박또박 들리고, 얼굴에 긴장감이 옅어졌다. 불교의 가르침이 내 마음에 조금씩 들어왔다고 느꼈다. 이처럼 나의 마음을 달리 하자 세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마음가짐을 느낀 담당 교과목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조언도 해주었다. 나의 인식이 바뀌니 세계도 이에 감응한다는 위대한 사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결국 나의 노력과 세계의 도움 덕분에 CNU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이론과 실제를 합하니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았다.

 

  자아에 대한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훌륭한 오아시스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위대한 사상가들의 결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결론을 일상에 직접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매우 매력적이다. 위대한 사상은 내 마음속 수면을 흔드는 거친 파도를 조금씩 잠재워, 고요함을 얻도록 이끌었다. 이원론의 사막에서 나를 찾지 못해 헤매던 도중, 일원론을 통해 나와 세계라는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말하기 대회라는 물을 흠뻑 마셔 갈증을 해결했다. 이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에 대한 물음을 해결했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만 남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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