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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이상적이 북경에서 간행한 아버지의 시집 천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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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1. 3. 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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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종이에 중국양식으로 장정된 전형적인 중국목판본 한 책.

 

얼핏 보기에 중국인의 시집으로 보이는 이 책은 1858(철종 9) 중국 북경에서 간행된 조선 후기 역관시인(譯官詩人) 천뢰 이정직(李廷稷, 1781~1816)의 시집이다. 대대로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에서 태어난 이정직은 역관으로나 시인으로도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인물은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그의 시집이나 문집이 간행된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이정직의 시집이 조선도 아닌 저 멀리 중국 북경에서 간행된 것일까?

 

이 시집이 중국에서 간행된 배경에는 아들인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있다. 이상적 역시 역관으로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다. 1825년 한학(漢學: 중국어) 역과(譯科)에 합격하였고, 1829년 첫 연행(燕行)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12차례나 청나라에 다녀왔다. 역관이면서도 벼슬이 정2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써 명성이 높았다. 헌종(憲宗)이 그의 시를 자주 읊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시집 제목을 󰡔은송당집(恩誦堂集)󰡕이라 하였다.

 

이 책은 이상적이 아버지의 시고(詩稿)를 간직하였다가 1858(철종 9)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간행하여 교유하던 청나라 문인들에게 선물하고 나머지를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보급할 목적으로 간행된 책이 아니기 때문인지 현재 남아 전하는 것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다.

 

도서관 소장본 이외에 영남대와 하버드 옌칭 도서관 단 2곳에만 소장되어 있으며 19세기 한중 문인들의 교유 관계와 역관들의 시적 소양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을 간행한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김정희가 남긴 불후의 명작 <세한도(歲寒圖)>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하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서예가인 김정희는 1840(헌종 6)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8년간 제주도로 유배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이어가던 김정희는 북경을 다녀온 제자 이상적으로부터 12079책이나 되는 거질(巨帙)󰡔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받는다. 조선에서 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책으로 이상적이 유배지에 있는 스승을 위해 청나라에서 구하여 제주도로 보낸 것이다.

 

멀리 제주도로 유배와 지인들과 멀어지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 속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자기에게 잘해 주는 제자를 보며 말 할 수 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이에 벅찬 감동에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한 쪽에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적어 제자에게 보낸다. 그리고 우선시상(藕船是賞: 우선, 이것을 감상하게), 마지막에는 장무상망(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적어 넣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작 세한도는 유배지에 있는 스승에 대한 변함없는 제자의 정성과 그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한 스승의 고마운 마음이 어우러져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천뢰시고 전시 안내

- 장소: 중앙도서관 5층 고문헌 자료실

- 전시기간: 2021. 4. 1. ~ 4. 30.

- 관람시간: 9:00~18:00(토요일, 점심시간 제외:12:0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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