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소치노묵(小癡老墨)

유용한 정보(Tips)

by CNU Lib newsletter 2021. 5. 1. 01:00

본문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이자 서예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수묵화첩(水墨畵帖)이다.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 태어난 허련은 대흥사(大興寺)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만나 사제의 연을 맺었다. 스승인 김정희를 통해 여러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고, 1846년 권돈인(權敦仁)의 집에 머물며 헌종(憲宗)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도 인연을 맺었다.

 

소치(小癡)라는 호는 중국 원나라의 대화가인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만큼 뛰어난 화가가 되라는 뜻으로 스승인 김정희가 지어준 것이다. 김정희는 허련의 그림이 자기보다 낫다며 소치의 화풍이 종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루한 기습을 떨어 버렸으니,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고 평하기도 했다.

 

1840년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자 해남까지 배웅하였고 이듬해에는 제주도로 직접 찾아뵈었는데, 허련은 김정희가 유배된 동안 모두 세 차례나 제주도를 방문하여 스승을 위로하였다.

 

스승인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49세의 나이로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열고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 허형, 손자인 남농 허건, 방계인 의재 허백련에게 계승되어 현대 호남 화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말년인 70세에 이르러 석파란(石坡蘭)’으로 이름난 흥선대원군을 만나 교유하였는데, 대원군은 그를 두고 평생에 맺은 인연이 난초처럼 향기롭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도서관 소장본은 공곡청향(空谷淸香)이라는 화제(畫題) 아래 4점의 묵란화와 송나라 진감지와 청나라 정섭의 시구(詩句)를 적은 제시(題詩)가 있다. 화첩 뒷부분 난초에 관한 글 중 근래의 사람들 가운데 석파 이하응(李昰應, 1820~1898: 후에 흥선대원군)이 난초에 심취하여 당대에 뛰어나다는 내용이 있다.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화첩의 말미에는 송나라 서예가이자 화가인 미불(米芾)이 소장했다는 연산석(硏山石)을 상상하여 그린 연산도(硏山圖)에 허련이 말년에 사용하던 노치(老癡)라는 호가 쓰여진 것과 표제가 노묵(老墨)‘인 것을 보아 말년의 작품으로 보인다.

 

 

봄비와 봄바람에 어여쁜 얼굴을 씻고 신선이 사는 섬을 한 번 떠나 인간세상에 왔네

 

깊은 골짜기에 머물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여느 풀과 다른 것은 무슨 마음인가?
천 길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난초 꽃이 허공에 피어 있으니

 

나무꾼이 지름길로 지나갈까 두려워 다시 높은 산을 그려 막아 놓았네
印記: 許鍊之印, 小癡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