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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1(지역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2. 2.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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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2021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지역민 부문)을 수상한 위보미 님의 독서후기 '불효녀 선언, 차라리 엄마를 덜 사랑하기로 했다'입니다.

 

불효녀 선언, 차라리 엄마를 덜 사랑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딸들은 크고 작은 후유증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 핵폭탄과 IMF 지진, 코로나 바이러스급인 남아선호사상의 재앙을 겪고 나서 '남부터 먼저 생각하는 착한 딸' 후유증을 가지게 되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제쯤 이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이 성격도 지긋지긋한데 말이다.

 

  물론 후유증 없이 완벽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손에 꼽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우리 집은 버티기 힘든 집 상위 5% 안에 속할 정도로 가난하고 힘들었다. 아빠는 사업적 센스도 없는데 사업하다가 IMF에게 쥐어 터졌고, 자식은 또 4명이나 되서 결국 엄마가 직장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다. 고기는 한 달에 한번 먹었고 화장실에 휴지를 많이 쓰면 혼났으며 준비물 사게 돈 좀 달라고 하면 한숨과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준비물 값이 너무 비싸다는 엄마의 불평불만이 듣기 싫어서, 준비물 없이 학교로 가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싫은 소리 한 번을 하지 못했다. 왜긴 왜야.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돈 벌어오는 최고 권력자였고 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까지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심지어 내가 아끼는 물건을 지저분하다며 버리고, 일기장은 마음대로 들추고 읽는 지경까지 되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사적인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하는 엄마를 밀어내면 그건 불효이고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니깐. 결국 그 후유증으로 참을성 많고 배려도 잘하며 남부터 생각하는 착한 딸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에 그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내게 효도를 원하고부터 서였다. 이제 너도 어른이 됐으니 그 월급으로 효도 좀 하라고 계속해서 어필을 했고 나는 그 말에 어색한 웃음만 지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왜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지 않을까. 우리를 힘들게 키워주셨다는 것을 알고 엄마도 힘들다고 맨날 말했는데 나는 왜 엄마에게 거한 생일선물 하나 사주고 싶지 않을까. 효도가 우선일까, 내 마음이 우선일까. 엄마와 나의 관계는 고작 이런 관계였나? 그건 엄마와 내가 서로 건강한 관계가 아니었고 그래서 나의 마음이 자꾸 엄마를 밀어낸 것이다.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책에서는 적절한 거리와 배려심을 자주 언급한다.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내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사적인 영역과 그 영역을 함부로 침입하지 않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친하다는 이유로 딸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 일기장을 들추는 그런 배려심 없는 관계에서는 사적인 영역이 유지될 수도 없고 건강한 관계도 유지될 수가 없다. 명령과 복종만이 있는 수직적인 관계만 있을 뿐이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고 그 영역에 들어가기 전 노크를 하는 배려, 한참 어린 아이라도 존댓말을 쓰고 그 아이의 생각에 동의해주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한 감정난독증이 있는 사람,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 파악에 너무도 서툰 사람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주말에도 연락해서 회사 이야기 꺼내는 직장 상사, 일이 안 풀리고 바쁘다는 이유로 내 전화에 화부터 내고 보는 거래처 직원, 우리 자식들은 왜 효도를 안 하냐며 이해 못하는 엄마. 그들은 틈만 나면 나의 마음의 울타리를 부수고 비집고 들어가 지배하려고 했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고양이도 처음 본 사람이 강제로 만지려고 하면 할퀴는데 사람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제 나도 내 영역에 침범하면 창으로 찌를 것이고 비집고 들어온다면 밀어낼 것이다. 심지어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요즘 나는 내 마음의 울타리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 이번에는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강철, 아니 티탄산 바륨 주석 합금으로 만들어진 울타리로 지을 것이다. 하지만 벽이 아니라 울타리다. 언제든지 울타리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내가 허락한 사람만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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