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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서후기 공모전] 최우수상 (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2. 2. 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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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2021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권다영 님의 독서후기 '삶에는 지지대가 필요하다'입니다.

 

삶에는 지지대가 필요하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이 뭐라고, 대학 문턱 한번 밟아보자고 2년간 책상에 달라붙어 수험 생활을 했다. 혹시나 공부 시간이라도 뺏길까, 공부 의지가 무너질까, 다른 사람에게 내 고통스러운 감정을 짐처럼 지우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그 2년간 사적인 만남이나 대화를 극도로 꺼렸음은 물론이다. 말을 잊은 사람처럼 책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 합격증을 받은 그해 겨울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한때의 해프닝으로 지나갈 줄 알았던 전염병은 2년을 갔다. 공부한다고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과는 얼굴 한 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동기들과 안면도 제대로 트지 못한 채 어영부영 2학년 2학기에 접어든 올해 9, 정말 이대로 입이 사라져 붙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반쯤 진심으로 생각했다.

 

  나는 입이 트인 순간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늘 나서서 발표하는 편이었고, 토론 대회가 열렸다 하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거의 항상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또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말하길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타고나길 내향적이었던 나는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으니 인간관계를 일구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에 안달복달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물론 좋은 일로 하게 된 건 아니나 이참에 맘 편히 요양 삼아 쉬면 되겠다고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보낸 첫해는 거의 이러닝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수험 생활과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준비된 인터넷 강의를 시간 맞춰 듣고, 교재를 풀고,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넣고 답변을 받고. 내가 기대했던 대학 생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잘 해냈다. 문제는 화상 수업이 시작된 뒤부터였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노트북 카메라에 눈을 맞추고, 이어폰 마이크를 드는 것도 긴장됐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다 기록되고 있고, 이게 대학에서의 내 첫인상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표는 어떻게 하는 거더라? 사람은 어떻게 사귀는 거였지? 어쩌다 보니 거의 4년이 넘도록(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부득이 인간관계에 소홀해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극도로 협소한 세상에서 살던 내가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자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이 가물가물해진 내게 효과적인 재활 방법을 알려줄 것 같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며 관계 맺기가 더 어려워진 현실을 말한다. 면대면 소통 대신 비대면 소통의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더욱 강화된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설령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응원을 불어넣는다.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뉜다. 첫 장에서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인간관계 연습을, 두 번째 장에서는 공감 대화법을, 마지막 장에서는 나를 지키는 마음 연습에 대해 말한다. 책의 어조는 시종 부드럽고 따뜻하다. 멍청하게 이런 별것 아닌 일도 못해서 힘들어하느냐는 꾸지람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독자들을 상냥하게 위로한다. 인간관계는 누구나 힘들고, 누구나 종종 괴롭다고. 그러나 그런 괴로움은 마음가짐에 달린 경우가 대부분이니 내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면 훨씬 편해질 수 있다고.

 

  물론 막연한 충고만 건네지는 않는다.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제목처럼 지침도 꽤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위해 평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글로 적어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내가 원하는 반응을 최종적으로 적어보라고 권하는 식이다. 책이 제시하는 지침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나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은 그 자체로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그간 겉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쌓는 데에만 급급하며 나 자신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태도가 익숙했을 때는 그런대로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지만, 낯설어지는 순간 완벽할 수 없다는 공포가 나를 엄습했기 때문에 그토록 두려웠던 것이다. 나도 몰랐던 이런 내 마음을 깨달은 뒤 이어지는, 나 자신이 오롯이 나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참 좋았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 것. 그러나 사람을 배척하고 홀로 남겨지려 하지도 말 것. 다른 사람에게 나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을 것. 그러나 독선적이지 말 것.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특별하고 새로운 비밀은 이 책에 없다. 만일 인간관계나 화술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관심 있게 찾아본 사람들이라면 웬만해서는 거의 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느낄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진리는 언제나 쉽고 단순하며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추구해야 하는지는 고대 사상가들 시절부터 여러 지식인의 입을 타고 꾸준히 변주됐다(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을 여러 번 인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순히 보기만 한 것은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보는 것보다 아는 것, 아는 것보다 깨닫는 것, 깨닫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 속의 당연한 진리를 잊고 휘청거릴 때 이런 책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진리를 일깨우며 지지대처럼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단단해진 우리는, 어쩌면 다른 사람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 책이 내게 가르쳐준 대로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관계를 연습해보려 한다. 달라진 세상을 의연하게 가로질러 건너갈 것이다. 관계에는 연습이 필요하고, 삶에는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지지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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