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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상적인 관료명단 구암정안(龜庵政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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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2. 3.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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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제갈량 /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은주 삼대(유학자들의 이상향) 이상이다.

구암정안(龜庵正案)!!!

일명 만고도목(萬古都目)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조선시대 관직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중국 역대 명현(名賢)들을 선발한 이상적인 관료 명단이다.

 

저자인 구암(龜巖)이 누구인지는 언제 편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릉을 담당하는 관직 중 헌종(憲宗)의 묘인 경릉(慶陵)은 보이지만 철종(哲宗)의 묘인 예릉(睿陵)이 없는 것으로 보아 헌종 사후에 철종 연간(1849~1863)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의정부(議政府)의 삼정승부터 나루터를 관리하는 진도별장(津渡別將)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관직명 나열하고 중국 한나라부터 명나라까지 역대 인물들을 살펴 이상적인 인물을 배치했다. 각 인물명 아래로 4() 2()의 인물평을 붙이고 출신 왕조를 표기했다. 조선시대 1,411개의 관직에 1,391명의 중국 역대 위인들의 특성을 살려 그에 맞는 관직을 맡긴 지은이의 식견이 놀랍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을 살펴보면 영의정에 제갈량(諸葛亮), 병조판서에 관우(關羽), 예조판서에 한유(韓愈), 예문관 검열에 사마천(司馬遷), 성균관 대사성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등이 눈에 뜨인다. 판관 포청천으로 잘 알려진 포증(包拯)은 서울시 부시장에 해당하는 한성부 우윤에 이름을 올렸다.

 

한성부 우윤: 포증 / 나에게 사건 기록이 있으니 누가 감히 재판에 뇌물을 쓰려 하는가?

같은 내용의 필사본이 낙포정안, 만고도목 등의 서명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 연세대, 미국 버클리 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9세기 후반 다양한 이름으로 필사되어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내용의 필사본이 유행을 했을까? 19세기 철종연간은 안동김씨 일족이 정치를 좌우하고 삼정(三政)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횡포로 백성들의 생활이 토탄에 빠져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출사하지 못한 선비들이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중국을 명현들을 조선에 관직에 임명하여 이상적인 관료명단을 꾸려보려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조선의 관직에 중국의 명현들을 임명했을까? 우리나라 역대 명현들로 이상적인 정부를 구성해본 책은 없었을까? 아쉽게도 우리나라 위인들로 이상적인 관료조직을 꾸민 조선시대 만고도목은 아직까지 발견된 것이 없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일제강점기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나라 역대 인물들로 만고도목을 꾸민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 최남선은 자신이 간행하는 역대인물전형의안(歷代人物銓衡擬案) 기이비관(其人備官)을 발표했는데, 이 글이 일명 <조선만고도목>이다. 조선 후기 또는 일제강점기의 관직명 아래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당 관직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인물을 배치하고 출신 왕조명과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1918년 청춘 14호에 실린 최남선의 기인비관(일명: 조선의 만고도목)

내각을 구성하는 대신들의 명단은 총리대신 을파소(乙巴素, 고구려), 외부대신 서희(徐熙, 고려), 내부대신 팽오(彭吳, 단군조선), 탁지부대신 명랍고(名位古, 부여), 육군부대신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 해군부대신 이순신(李舜臣, 조선), 법부대신 왕수긍(王受兢, 기자조선), 학부대신 설총(薛聰, 신라) 등 이다.

 

내각을 비롯하여 기인비관의 중요 관직에 선임된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삼국시대 이전 고대 위인들이 다수 포함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에게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강조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는 한편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조선 위인들은 중요 관직에 임용된 경우가 거의 없다. 조선의 인물로 중요 관직을 맡은 사람은 국립대학총장 이황(李滉), 검사총장 조광조(趙光祖), 하원의장 이이(李珥) 정도이며. 세종 때 영의정만 18년간 역직하며 명재상의 대명사라 불리는 황희(黃喜) 정승은 하원의원 중 조선대표로만 선발되었다. 나머지 조선의 위인들은 주로 실무진에 포진해 있다.

 

이처럼 조선 위인들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조선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일제강점기를 겪게 되었다는 당시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선의 위인 중 현재 장관에 해당하는 대신에 임명된 사람은 이순신이 유일하다.

 

책은 편찬될 당시 시대의 상황과 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慕華思想)이 강하게 남아 있던 조선시대의 만고도목은 중국의 위인들로 작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최남선의 만고도목은 우리나라 위인, 그 중에서도 상고사의 위인들이 많이 반영되었다.

 

조선시대 만고도목이 지식인들의 지적유희였다면 최남선의 만고도목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같은 제목과 같은 형식이지만, 책이 만들어진 목적과 내용은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구암정안 전시 안내(온라인)

- 전시기간: 2022. 3. 1. ~ 3. 31.

- 중앙도서관 공사로 인하여 온라인 전시(도서관 홈페이지, 웹진)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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