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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직후 전남 보성에서 간행된 병법서 삼략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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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2. 4.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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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보성에서 박근효가 간행한 병법서

삼략직해.

진한교체기에 황석공이 장량에게 전수했다고 전해는 병법서 <삼략(三略)>을 명나라 유인(劉寅)이 주해한 책이다. 태공망이 저술했다고 전하는 육도(六韜)와 합쳐 육도삼략으로 불린다.

 

조선시대 무과 복시에 강서과목에 채택된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하나였기 때문에 무과를 준비하는 시험생들의 교과서로 많이 간행되어 보급되었다. 특히 <삼략>은 다른 병법서와 다르게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기르는 통치철학을 담고 있으며 유가, 도가, 법가 사상을 모두 담고 있어 무인들뿐만 아니라 문인들에게도 널리 애독되었다.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유인의 주해본을 비롯하여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 등이 여러 차례 간행되어 조선 말기까지 유통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간행되었던 <삼략> 중 도서관에 소장된 <삼략직해>는 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1600년(선조 33) 전라도 보성(寶城) 죽천서당(竹川書堂)에서 박근효(朴根孝)에 의해 간행되었다. 박근효의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인데 박근효는 이때 군량을 운반하는 참모관으로 활약을 하였다. 

 

7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조선은 감당할 수 없는 인적, 물적 손실을 입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보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자 했던 박효근은 교재로 사용할 서책이 없어 곤란을 겪게 되었다.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전라도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였고 특히 많은 서책이 불타거나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효의 문집 <만포집(晩圃集)>에는 1599년(선조 32) 전쟁으로 불타버린 서책을 복구하기 위한 박근효의 노력이 담긴 통문 3건과 편지 6건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박근효는 임여우, 선인후, 안계언 등과 서적 복구의 뜻을 모으고 부족한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의병활동을 하며 인연(因緣)을 맺은 좌의정 이덕형(李德馨), 전라도 순찰사 한효순(韓孝純), 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 통제사 이시언(李時言), 명나라 제독 진린(陳隣) 등에게 서신을 보내 서적 간행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특히 이덕형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전라도 나주에 모인 각공(刻工) 중 일부를 보성으로 보내주길 청하는 글이 있어 이 시기 나주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서적 복구 사업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력경자(萬曆庚子)는 선조(宣祖) 33년으로 1600년에 해당되며 맹하(孟夏)는 초여름으로 음력 4월의 다른 이름이다.  죽천서당의 죽천(竹川)은 박근효의 아버지 죽천 박광전의 호(號)로 박광전의 문인과 후손들이 수학(受學)하던 서당으로 추청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600년 <천자문>, <소학집설>, <십구사략통고>, <삼략직해>를 간행하는데, 간행과 관련된 일련의 기록이 <십구사략통고> 발문(跋文)에 남아 있다<삼략직해> 이외의 3종은 모두 초학자의 입문용 서적으로 박근효가 초학자들의 교육을 위해 이 책들을 간행했음 알 수 있다. 또 병법서이자 무과의 시험교재였던 <삼략직해>의 간행은 전쟁 직후 높아진 국방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근효의 서적간행활동은 오랜 전쟁 직후 국가가 주도하는 간행사업과 별도로 민간이 주도한 첫 간행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민간에서 주도했던 간행사업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간행하지는 못하여 현재 남아 전하는 책이 드물다. <천자문>은 현재 전하지 않고 나머지 3종도 1~2곳에만 소장된 희귀본이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 미래를 위한 교육을 준비한 박효근의 노력과 임란 직후 전라도 지역의 민간 출판활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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