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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전라도 나주에서 판각한 퇴도선생자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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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2. 5.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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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을 집대성하여 '동방의 주자'라 존중받는 퇴계 이황의 자성록이니다. 이 책은 퇴계가 학문적으로 완숙해진  1558년 지인들과 주고 받은 중 자신의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편지 22통을 뽑아 엮은 글이다.

 

책의 첫머리에 이황의 글씨를 판각한 자서(自序)가 있고 책의 간행동기를 알 수 있는 발문(跋文)은 없다. 다만 권말 만력13년 겨울 전라도 나주에서 판각했다는 간기가 남아 있어 이 책이 1585년 나주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퇴계가 자성록을 지은 후  28년이 지나 1858년 나주목사(羅州牧事)를 지내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 판각되고 인쇄된 것이다. 

 

권말 만력13년(1585) 전라도 나주목에서 개간되었다는 간기가 있다.

조선시대 책을 출판하는 일은 매우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도대체 왜 1585년 뜬금없이 퇴계와 아무 연고도 없는 전라도 나주에서 이 책이 판각된 것일까? 조선시대 책을 만드는 일은 매우 많은 물자와 인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관아를 가리지 않고 국가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통제되었다. 그러다 16C에 접어들면 지방관이 독자적으로 출판계획을 세워 책을 간행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자성록이 판각될 당시 나주목사는 퇴계 이황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이었다. 

 

김성일은 스승의 원고를 전해받아 평소 책을 간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나주목사로 부임하면서 나주의 물자와 인력을 활용하여 자성록을 간행한 것이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자성록의 책판은 김성일 나주목사에서 물러나면서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으로 옮겨 보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1600년 <퇴계선생문집> 초간본이 편찬될 때 별도로 간행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조선에 잡혀간 강항 등의 유학자와 약탈해간 유학서적들의 영향으로 조선의 주자학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특히 퇴계 이황이 에도시대 주자학자들에게 크게 존중을 받으며 퇴계의 여러 저술도 주목을 받게 되는데 자성록도 임진왜란 직후와 1660년, 1665년 3차례나 간행되어 일본 주자학자들이 마음을 공부하는 필수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자성록의 영향일까? 자성록은 정조 때 다시 한 번 중간되고 뒤에 퇴계 이황의 모든 저작물을 모은 <퇴계전서>가 간행될 때 독립된 서책으로 출간된다. 

 

도서관 소장본은 1585년 나주목 간기가 있는 초간본이나 인쇄 상태나 종이 재질로 볼 때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것은 아니고 조선 후기 어느 시점에 나주목의 책판으로 인쇄한 후쇄본이다. 하지만, 자성록 자체가 그리 많이 인쇄되지 않아 남아 있는 판본이 드물어 그 가치가 높다. 조선 중기 지방관의 출판 활동과 조선 유학서적이 일본에 준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연구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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