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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독서후기 공모전] 우수상 2(재학생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3. 2. 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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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불편한 편의점]

2022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김한음 님의 독서후기 '멀리서 보면 희극'입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독고. 나는 그 이름의 연원을 모른다.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고독해 보여서, 단 두 음절이 빚는 발음을 구태여 씹어볼 때면 혀끝이 쌉쌀해서. 그러므로 알고자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쉬이 마주칠 법한 군상 또한 아니지 않나. 기실 지나치게 포용적인 사장님도 이상했고, 공부와 일을 병행한다는 알바생도 이상했고, 비딱한 참참참 아저씨나 낮의 아주머니도 이상했다. 그래, 그 편의점은 내게도 불편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토속적으로 외로움을 지병으로 앓기에 타인과의 관계가 그리 중요하다더라. 그러나 동시에 이타적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종족이요, 뭇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인생에서는 오로지 나만이 주인공이므로, 특히 나와 관계없는 이들을 무의식 중 종종 게임 속 캐릭터 취급을 하곤 한다. 이를 테면 편의점 알바생이라던가 옆옆 차선의 저 앞쪽에 위치한 빨간 차 운전자라던가. 정말로 관계가 지속될 일 없는 존재는 지나가는 행인 7, 8 정도의 엑스트라로 치부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그러했다- 이따금 그들이 살아 숨 쉬는 인물임을 본의 아니게 알아차리면 화들짝 놀라고 마는 것이다.

홀로 서기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다닥다닥 마주보고 붙어있던 대문들이 여전히 다닥다닥 붙어있음에도 시멘트에 단단히 끼어 철옹성 마냥 움직이지를 않는다. 덜컥거리는 빗장이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이웃끼리 오가는 정이니, 동네 친구니, 형님 아우 하던 관계는 불씨마저 찾아보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멀거니 서 있다가 누군가 먼저 인사라도 해 오면 그게 참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꾸벅 목례하긴 했으나, 항시 타인이 내게 관심을 좀 꺼 주었으면 했다. 안 그래도 좁은 인간관계 풀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새로운 사람을 마주쳐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면 오만 핑계를 대며 수준급의 회피 마스터가 되었다. 등교 시간이 늦어 자칫 옆집 사람과 마주쳐 어색한 침묵 사이 짧은 몇 분을 견디는 일이 생기면 그날부로 나의 등교 시간은 약 10분씩 늦어지거나, 일러지곤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토록이나 폐쇄적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홀로 서기와 독립이 미덕이다. 그렇지만, 이건 거의 고립이 아닌가? 거기까지 미치자 불현 듯 밀어닥치는 고독이 있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처절한 온도가 있었다.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다. 홀로 섰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지? 의욕도 즐거움도 없었다. 고독했다. 자업자득일는지도 몰랐다. 그때까지도 사태의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던 중 펼쳐들게 된 책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웃기네. 편의를 찾아야 할 편의점이 불편하면 장사를 하겠다는 건가. 순전히 제목이 우스워 집었을 뿐이었다. 관성적으로 뒤집어본다. 서울역 홈리스, 독고, 우정. 나 참. 집이 있었으나 살아가며 돌아갈 곳이 없었노라 여기었고, 친구가 있었으나 외면과 회피로 얼룩져 먼저 선뜻 손 내밀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이 홈리스 같았다. 그래요, 모두가 무시하고 외면하는 당신이라도 행복한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도 않았으면서, 지루하고 처절한 시간 죽이기를 명목으로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작가는 초반엔 그에 대해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 뜨끔했으나 그런 것쯤은 곧 금세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소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의 향연 속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나 보다. 이상한 편의점 사장은 염 여사님, 깍쟁이 같던 알바생은 유능한 시현 씨. 꼬인 사람마냥 보이던 스트리트맨은 경만 씨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온열기를 옆에 두고 나도 참깨 라면에 참치 김밥, 따끈한 옥수수 수염차까지 마시고 싶었다-, 내가 한참도 더 전에 포기했던 꿈을 상기시켜 준 정 작가님,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엄마한테 더 잘하라며 쥐어박고 싶은 민식이 놈, 그 외에도 고생 덜했으면 싶은 선숙 씨, , 원장 놈. . 아무 걱정 없이 소리 내어 웃고, 답답해서 화가 났다가, 속이 꽉 막힌 듯 먹먹한 기분에 도로 전 문단부터 다시 곱씹고 있으니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냥 이상하고 마냥 불편하게 묻어 두었으면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이상하다. 내 감정 쏟을 이유 없이 희극처럼 넘겼을 터였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제각기의 살아있는 인생의 단편을 읽고, 그들이 내게 이웃처럼 느껴지고, 요동하는 내 자신이 비극일지언정 거기서부터 살아있음을 느낀다. …….

시간이 지나 고통 속에서 기억을 잃고 겨우 세상에 눈을 뜨고 나서야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소통할 사람을 찾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그러나 힘을 내야 했다.”

그러니 힘을 내야 했다.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후두둑 쏟아지는 눈물이, 지금껏 과할 만큼 방어적으로 굴어왔던 기억들이 우수수 부유해 뇌 속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반증이었다. 나 역시도 기억을 되찾는 독고처럼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스멀스멀 몰려왔지만, 그러니 힘을 내기로 했다. 더 이상 물러나 방관자처럼 살아가지 않기로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우스갯소리로 이른다.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의 거리에서 외면과 회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게 되니까. 단순히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삶이 언제나 장밋빛일 수는 없지 않나. 수많은 굴곡들이 한 사람을 빚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난과 역경을 발판 삼아 나아가는 생애가 아닌가. 부대끼고 부딪히는 체온으로 고독이란 질병을 이겨내는 인간이 아닌가. 독고. 이제는 그 이름을 안다. 죽음이 창궐했을 때에 삶을 깨우친 이름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산책을 나갔다. 옆집 이웃을 마주쳤다. 꽤나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하얀 비숑 두 마리를 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해진미 도시락이 떠올라 코앞의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샀다. 사장님이 종종 내게 아는 척을 해 잠시 발길을 끊었던 편의점이었다. 간만에 가니 반갑게 맞아주시더라.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인사였다. .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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