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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 3(시도민 부문)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24. 2. 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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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대상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시도민 부문)을 수상한 이경란 님의 독서후기 '사회주의가 남긴 이데올로기'입니다.

 

사회주의가 남긴 이데올로기

 

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적어도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감에 대해 깊이 생각 해 보지 않았다. 그저 무뚝뚝하고 급하신 성격 덕분에 매일 딸인 나와 언쟁을 할 수밖에 없는 사이로만 각인이 되어 있던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학창시절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갈등으로 힘들게 성장한 기억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도 삶에서 해방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날이 있었을까.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또한 가장이라는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하셨을까ㅡ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에 대한 나의 착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 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

라는 첫문장부터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시작부터 강렬한 팩트의 한 문장이 더욱더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집념으로 시작하며 첫장을 넘기기 바빴다. 좀처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며 읽어 내려가다 아버지란 존재가 가지는 힘과 남겨진 가족을 위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인생이 그려진 책임을 알고 가슴이 저며왔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을 때는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먼저다. 나또한 눈물 한방울 흘리실 줄 몰랐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에 작은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등돌리시며 우시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게 난다. 아버지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게 커다란 파장 같은 거였다. 스스로 나약함에 빠지지 않으시려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누나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은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었던 유일한 혈육을 잃은 아픔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때 보인 눈물은 그런 의미라는 걸 시간이 지나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책을 통해 느껴지는 현실과 그것을 마주하며 버텨야만 했던 한 가장의 어깨가 보였다. 사회적 인식과 빨간줄이라는 낙인만이 당장 살아가야 할 가족과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남겨진 가족에게 어떤 아픔으로 다가오게 되는지 절실하게 체감하는 책이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나에겐 그저 낯설게만 느껴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속에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외로움과 평생을 싸워야만 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지가 원한 세상은 큰 그림이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처럼 똑같이 공부하고, 여자.남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공부하는 세상이었다. 그건 아버지 뿐만 아니라 구례에 살고 있는 모든 순박한 이들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죄를 짓지 않고도 죄인의 낙인이 찍힌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현실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저 함께 잘 살아보자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현실은 그 평범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아버지가 죽었다.”의 첫문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숨겨진 모습은 죽음을 맞이한 후 3일 동안의 작은 여정들에서 엿볼수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을 알려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장소에 각각의 사연들이 모였다. 그리고 슬픔보다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하나하나 관련된 인물들의 사연을 펼쳐 놓는다. 아버지를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아버지가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같이 산에 올라 갔다 죽은 동료의 가족도 한곳에 살 수밖에 없는 구례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오지랖이라며 핀잔만 늘어놓던 딸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미담들이 그저 몰랐던 또다른 나의 아버지의 모습까지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이 소설속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본다. 사회의 금기어로 여겨온 전직 빨치산이자 뼛속까지 빨갱이라는 단어는 아버지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홍글씨처럼 지울 수 없는 허물로 자리하게 한다. 특히 연좌제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식들마저 뿌리칠 수 없게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빨치산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큰집 길수 오빠가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삶이 바뀐 안타까운 얘기도, 형으로 인한 작은 아버지의 피폐한 삶에 대한 사연도 가슴을 먹먹하게 더해 준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책을 통해 한번 더 가슴에 담게 되었다, 그저 과거속의 언어일 뿐이라고 짐작만 하고 넘기기엔 그 감정또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은 연좌제가 1961년부터 1987년까지 족쇄처럼 존재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본인의 부모, 형제, 사촌, 육촌, 팔촌까지도 죄를 전가시켜 연대적으로 범죄의 형사 책임을 묻게 했던 제도...연좌제로 고통받던 우리의 과거속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눈을 가린다.

모두가 침을 뱉어댔던 아버지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아버지의 사람 냄새가 너무나 좋았다. 언제든 부담없이 토닥 거려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홀로 남겨진 딸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알려 주는 듯 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의리, , 따뜻한 마음, 배려...등 아버지에게 받았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소환 해 낸다. 그리고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 혼자 외롭게 짊어 온 아버지의 인생을 보상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더 의미있게 보이고 좀 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

첫장을 넘기던 때가 생각난다. 딸아이의 학원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커피 한잔과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다. 정해진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잘 집중을 못하는 성격이지만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얼마나 혼자 히죽히죽 웃어댔는지 모른다. 작가의 유쾌함이 인물의 말과 행동속에서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 되었기 때문이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운명하신 아버지완 달리 이야기는 나를 행복하게 이끌어 주었다. 작가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달이 된 자소설이어서인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한편 소설을 마주하며 작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힘들었을 성장기가 안쓰럽다. 그러나 현대사의 아픔을 들춰 우리들의 기억에 노크하는 방법은 참 멋진 것 같다. 잊고 싶은, 잊혀지고 있는, 현대사의 아픔을 다시 일깨운 소설, 누군가에게는 주홍글씨처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지만 모두가 힘든 상황속에서 평등하게 보통으로 살고자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아 조금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희망이 보인다.

결국 우주였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보내야만 하는 순간이지만 이 또한 잊히고 만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신이 나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이해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아버지에게 맞딱뜨린 죽음은 아버지가 주홍글씨처럼 안고 왔던 모든 것을 놓게 되는 마지막 해방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사회가 만든 관념적인 이데올로기가 어찌보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산 증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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