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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영조의 명으로 편찬된 어제소학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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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NU Lib newsletter 2024. 3. 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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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언해 영조 어제서문

<소학(小學)>!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大學)>과 대비 되는 이 책은 송나라 주희가 유학 초학자를 위하여 입문용으로 엮은 책이다.

 

주희는 <소학>이 집을 지을 때 터를 닦고 재목을 준비하는 것이며, <대학>은 그 터에 재목으로 집을 짓는 것이라 비유하였다.  이렇게 <소학>은 본격적인 공부의 기초가 되는 만들기 위하여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담고 있다.

 

소학언해 권지일 입교

 

내편(內篇) 4, 외편(外篇) 2권의 총 6권으로 내편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 외편은 가언(嘉言선행(善行)으로 되어 있다.

 

<소학>은 성리학의 전래와 함께 고려말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조선 초기부터 유학자들에게 중시되었다. 특히 조선 중기 사림(士林)들은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는데 김굉필은 <소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인간교육의 절대적 원리가 됨을 역설하였다. 김굉필은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부르며 일생 동안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림의 중앙정계로 진출하면서 조광조, 김안국, 이황 등에 의하여 소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들은 민중교화수단으로 <소학>의 가치에 주목하여 한글로 번역된 <번역소학>를 널리 보급하였다. 하지만 중종 때 편찬된 <번역소학>은 지나치게 의역(意譯)이 많아 선조 때 교정청에서 직역(直譯)을 한 <소학언해>가 편찬되어 보급되었다.

 

선조 이후 조선 사회가 왜란과 호란, 예송논쟁, 경신대기근 등 견딜 수 없는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 표류하게 되면서 <소학>에 대한 중요성도 묻혀버리게 된다.

 

선정전훈의 소학제가집주

 

조선 후기 <소학>을 다시 주목하는 임금은 영조이다. 영조 때에 이르면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전시대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영조는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에서 신하들과 <소학>에 여러 학자들의 주석을 붙인 <소학제가집주>에 훈의(訓義: 어려운 뜻이나 단어를 풀어씀)를 붙여 다시 간행하였다. 이것은 조선 초 세종이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에서 신하들과 <자치통감강목>을 훈의하여 펴낸 <사정전훈의강목>의 예를 본딴 것이다.

 

이어 선조 때 교정청에서 나온 <소학언해>도 해석을 덧붙이고 수정하여 다시 간행한 것이 바로 <어제소학언해>이다. 도서관 소장본은 간기가 없어 정확한 간행연대를 알 수 없지만 인쇄상태로 보여 1744년 초간본이 만들어지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쇄한 판본인 것을 알 수 있다.

 

※ 도서관에서는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상설전시 <책으로 보는 영조와 그의 시대>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문헌 자료실을 방문하시면 영조 때 간행된 진귀하고 흥미로운 고문헌을 더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장소: 중앙도서관 5층 고문헌 자료실

전시기간: 2024. 3.~12.

관람시간: 9:00~18:00(점심시간, 토요일, 일요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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