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현대 의학의 역사 / 제임스 르 파누 - 박혜진 -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28. 10:37

본문

이번 서평은 2013년 1월 서지향 우수 회원으로 선정된 의예과 박혜진 학우의 서평입니다.

 

현대 의학의 역사는 전쟁에서 시작된다. 전쟁은 종합 예술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의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지어는 문학과 철학마저도 그 다양성이나 물량의 측면에서 비극적인 꽃을 피우게 된다. 현대 의학은 이들 학문들 중에서도 정말 크게 전쟁의 덕을 본 방면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이루어지던 “임상적 방법”에 따른 의학이 아닌, “임상과학”으로 이루어진 의학의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기 때문이다.

구시대의 임상적 방법은 의사와 환자의 인간관계, 환자의 병력과 현장 검사적 증상에 의존해 의료행위를 시전한 것이었다. 이것은 의사 각각의 자질을 십분 활용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전후에 등장한 임상과학적 방법론과는 그 효율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맞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임상과학에서는 통계학이 개입한다. 수십만 개의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주는 증상에 대한 정보가 의학을 생리학적 조사방법에 의해 탐구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환자들은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하였으며,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의료의 성격이 나타나게 되었다. 병리학에서는 증상을 사냥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느낌까지 비추이는 듯 했다. 이것이 바로 저자 제임스 르 파누가 이야기하는 현대 의학의 핵심이다.

제임스 루 파누는 3부에서 의학이 정체되는 현실을 강조한다. 더 이상의 임상과학의 진보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좀더 겸손한 시각을 필요로 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말할 수 없는 사물들에 대한 논의, 예를 들면 현대 의학과 같은 경우들이 인류의 지식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게 한다고 하였다. 이제 제임스 르 파누는 인정한다. 현대 의학이 실제로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 더 이상 발전의 길이 어려워 보인다고. 이 책을 불태워 버려야 다음 세대의 의학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궁에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발전이라고 규정했다는 것, 그리고 이제 미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의학의 한계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서를 불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식의 재정립이 우선 있어야 하겠다. 의학의 발전을 더 많은 사람들의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 했다면, 의학 지식의 미궁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나 나오는 과정에서나 둘 다 “발전”이 같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궁에 들어가는 과정을 “현대 의학의 진보“라고 하지 말고, 그곳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두 과정을 합쳐서 진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임스 르 파누는 지식이 미궁 속에 빠져든 것을 예찬한다음 상황적 딜레마에서 절망하였다. 그러나 이는 옳지 못하다. 우리는 미궁 속에 빠져든 의학 지식을 예찬하지 말고, 의학 진보의 현재 진행형이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진보의 끝은 더 이상 미궁을 발견하지 못하고, 빠져나온 미궁에서 무엇을 할 지 모르는 상태지, 미궁에 갇힌 상태가 아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