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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독서후기 공모전 수상작_우수상

미래를 여는 책/서평

by CNU Lib newsletter 2017. 12. 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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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독서후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박수빈(국어국문학과) 학생의 독서후기 '흰의 불온한 두 얼굴' 입니다.

 

 

 

흰의 불온한 두 얼굴

 

1. 들어가며

올 가을 첫 문학, 의 연과 행을 더듬는 시선은 조심스러웠다. 이 이상한 계절은 전공 서적의 정제된 활자에서 눈을 비껴 문학의 언어로 향하게 부추긴다. 기행일지 도피일지 알 수 없는 이 여정을 한강 작가와 함께했다. 국내의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던 한강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있어 예측 가능한 문제점들을 과감히 뛰어넘어, 채식주의자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민낯이 궁금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작가가 건네는 말을 직접 듣는 체험으로 이 긴밀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한강의 단편집 을 읽는 것으로 이 작가의 인상을 현상학적인 한 줄이 아닌 얼굴과 얼굴로서 대면하는, 한강을 독해하고픈 호기심과 동시대인으로서, 또한 학생으로서 당면한 숙제를 해소하는 하나의 화두로 삼고자 한다.

 

2. ‘의 첫 번째 얼굴 : 부당한 죽음

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의 두 가지 자의식을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먼저는 타국에 세를 들어 사는 의 존재로서의 자의식이다. 이 처음 보여주는 장면은 이 낯선 나라의, 낯선 집의 페인트가 벗겨진 문을 다시 희게 칠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방을 벗어난 도시의 풍경으로 시선을 확장하고, 그 도시와 매개되는 의 이미지를 찾아 엮는다.

그런 그녀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걷는다. 네거리에 세워진 붉은 벽돌 벽의 일부를 본다. 폭격으로 부서진 옛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독일군이 시민들을 총살했던 벽을 떼어다가 일 미터쯤 앞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지척에 모여 있던 유령들이, 자신들이 살해되었던 벽을 향해 우뚝우뚝 몸을 세우고 눈을 이글거릴지도 모른다.

이 타국의 도시에서, ()의 눈은 독일군과 그로부터 살해당한 유령들을 떠올린다. 그녀는 또한 유대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읽고 잠을 설친다. 1980년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조난당해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감상한다. 그녀가 관찰하는 은 불합리한 죽음과 탈락의 이미지를 관통한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단상은 어째서 낡고, 죽거나 파괴되고, 지워진 것을 붙잡는 행위로 이어지는가. 우리는 이 불규칙한 화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특정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어떠한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신호다. 여기선 국경이나 국적, ‘현재라는 현실의 시간성을 묻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제각각으로 체험했거나 습득한 공통의 정서-타국, 이민자, 비시민, 통제 할 수 없는 죽음, 디아스포라-를 주관적인 동시에 직관적인 시선, 그로 인해 재형성된 공간에 불러일으킨다. 이 그리는 정동(affect)은 작품의 배경인 칠십 년 이상 된 것이 없는 도시와도, 독자가 처한 21세기의 현재와도 충돌하거나 구속되지 않는 시간성, 관계성, 연대의 가능을 말한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 그래서 아직 새것인 사람. 어떤 기둥, 어떤 늙은 석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아, 그 위에 덧쌓은 선명한 새것과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지게 된 사람.

그리하여 이 말하는 가능은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가? 위의 인용문을 보자. 우리를 정의하지도, 추상화(abstraction)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경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단일화 되지 않으며, 다양한 이미지와 감각들이 살아남은존재로서 활보한다. 우리 안에 들어왔다가, 우리가 되었다가, 타자가 되었다가, 그 둘이 아예 덩어리지기도 하는 물적인(유동적인) 이입을 촉각적이고 공감각적인, 즉 언어적 표현, 비언어적 표현, 지표, 도상, 상징 등을 동원하여 자유자재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글자로서 존재 가능한 언어적 기호의 다양한 집합은 퍼스의 기호론을 연상시킨다. 다소 자의적인 개입으로 기호의 3요소를 변형, 투영시켜 보면 의 메시지와 이미지는 포토그래피(역사와 실화의 표상인 유태인, 게토, 독일군 등 독자의 인식체계에 명확한 개념으로, 사진처럼 떠오르는 이미지), 도상(보다 덜 구체적인, 그림처럼 연상되는 이미지), 상징(, , 유령 등으로 연상되는 합의된 의미)으로 재구성되며 풍부한 감각을 선사한다. 단일한, 일련의 구조를 벗어나는의 전개는 도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정과도 같이 불완전한 동시에 자유롭다.

 

3. ‘의 두 번째 얼굴 : 부당한 생과 삶

1장의 부당한 죽음을 호명하는 것에 이어, 부당한 생과 삶을 역설하는 2장의 구성으로 불온함을 형성한다. 2장은 첫아기를 죽이고 태어난 존재로 스스로를 감각하는 자의식이 많은 부분을 점유하며, 어머니의 이야기와 만난다. 따라서 1장의 불규칙한 관찰자적 시점에서, 보다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시점과 발화로 진입한다. 이는 첫 딸아이를 잃은 이듬해 어머니는 두 번째로 사내 아기를 조산했다.는 문장으로 담백하게 제시되다가, 유산한 아기의 얼굴을 흰 달떡과 같았다고 뚜렷이 회상하는 어머니의 기억,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머니의 조산 장면, 아기의 시체를 땅에 묻은 것을 회상하는 아버지의 기억들로 깊숙이 얽혀있다. 동시에 두 아기의 죽음 없이는 자신과 동생이 태어날 일도, 살아있을 수 있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의 직관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죽은 아기의 잊지 못할 흰 얼굴로 출발한 의 이미지는 가 먹어온 알약, 엑스레이 사진 속 희끗한 해골, 죽은 어머니의 뼛가루 등으로 즉각적이고 빠르게 촉발된다.

보다 직접적으로, “지금 이 도시에서 그녀가 통과하는 시간은 그렇게 흰 밤일까, 혹은 검은 낮일까?” 라는 독백에서부터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었음을 말할 때 모순처럼 보이는 어떠한 상들이 실은 거울처럼 맞닿아있음을 불현듯 일깨운다. 첫 아기의 죽음이 의 생과 삶의 전제가 되었고 차가운 인과가 되었지만, 그 죽음에 대한 뜨거운 연민과 애도가 공존한다. 여기엔 명확하게 나눠질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주체와 받는 대상에 대한 상호 연민, 슬픔, 막막함을 가감하지 않는다. 그들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은 가해 혹은 피해로 고정되지 않고 뒤바뀌기도 하며, 생생하게 전이된다. 그리하여 부당하고 불합리한 죽음을 말하는 동시에, 살아남은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하는 의 두 얼굴은 서로를 마주보며 공생한다.

 

4. 나가며

은 완전한 하나의 모습으로 귀결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기꺼이 물음, 모순, 과잉, 부조화로 남는다. 한강의 작품 속 각 인물들이 결여하고 있거나 과민하게 느끼는 감각들은 그들이 배제한 현실을 고발하고 경험해야 할 세계를 일깨운다는 발견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한강 특유의 섬세한 소통의 눈과 귀가 된다. 한강이 바라보고 그리는의 텍스트와 형식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열려있다. 수많은 이미지와 단상을 활보하는의 행보는 시대와 시간을 규정하지 않고, 공간과 감각으로 접근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당한 죽음부당히 얻은 생모두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공명하는 울림 속 중간쯤에 있다. 옳고 그름이, 너와 내가, 우리와 그들이 규정되지 않은 세계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수도 있겠다. 문학을 읽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는 생을 살아가며 미처 하지 못한 말, 묻지 못한 물음, 울지 못한 울음, 하지 못한 사랑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불현듯 그것들을 꺼내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숱한 기억들과 상들 가운데 나는 무엇을 붙잡은 채 마지막장을 덮었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한강은 이 책의 모든 말이 하고 싶은 말이기에, 작가의 말도 따로 싣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를 시작한 계절의 끝이 다가올 때까지, 마지막 문단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이 답답함과 불안함에 방도는 없다. 그저 당신을 더 읽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을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우리는 제각각 멀고 다른 선에서 출발할 것이며, 많이 오해하고 틀릴 것이며,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헤매고 고민할 것이기에, 반드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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